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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365/한국사찰 탐방

충청북도에서 꼭 가봐야 할 사찰 6곳: 4. 영국사

by 지오1 2026.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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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대표사찰 영동 천태산 영국사의 역사, 창건 배경, 가람배치, 문화유산 등을 통해 지역 불교문화의 흐름을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4.  영국사 (寧國寺)

충북의 설악이라 불리는 천태산 (天台山) 기슭에 자리한 영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충북 보은 법주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8년(668년)에 창건된 천년고찰입니다. 고려 문종 때, 천태종을 개창한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크게 중창하여 국청사(國淸寺)라 하였고, 산은 천주산(天柱山)이라 하였으며, 이후 고려 명종 때 원각국사(圓覺國師) 덕소(德素)가 그 법맥을 이어받아 천태종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현재의 이름인 영국사는 본래 만월사(滿月寺)라 불리던 것을 의천이 국청사로 이름하였고, 그 후 공민왕 때 영국사라 개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국사는 전형적인 산지가람형 사찰로, 해발 300m 지점의 비교적 평탄한 대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사찰 입구에서 천 년의 세월을 간직한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가 방문객을 먼저 맞이합니다. 영국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은행나무인데, 수령 약 1,0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가 31m에 달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길 때마다 소리를 내어 운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영물이라고 합니다. 영국사 진입로에서 일주문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오르면 웅장한 만세루가 나타나며, 누각 아래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을 중심으로 삼층석탑과 극락보전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어 아늑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영국사는 다수의 중요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데, 주요 보물로는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영국사 승탑(보물 제532호), 영국사 삼층석탑(보물 제533호), 망탑봉 삼층석탑(보물 제535호), 영국사 후불탱화(보물 제1397호) 등이 있으며 충북유형문화재인 대웅전과 석종형/원구형 승탑 등도 들 수 있습니다.

 

◆영국사 이름의 유래:  고려 시대, 홍건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큰 위기에 처했던 때, 적군이 개경 근처까지 들이닥치자 공민왕은 먼 길을 떠나 이곳 영동의 깊은 산세 속에 자리 잡은 '국청사(당시 이름)'로 피신하게 됩니다. 왕은 절에 머물며 오로지 나라와 백성의 안녕(국태민안)만을 바라며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한편 왕은 인근 마니산성에 군사들을 배치해 삼엄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으며, 절 맞은편, 마치 팽이를 깎아 놓은 듯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 위에는 왕비가 머물도록 하고 가장 소중한 옥새를 왕비에게 맡겨 그곳에 보관하게 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마니산성의 군사들이 기지를 발휘해 홍건적을 함정에 빠뜨려 물리쳤고, 마침내 개경을 되찾으며 난이 평정되었습니다. 기쁨에 찬 공민왕은 부처님께 감사의 절을 올리며 "이제 왕실과 백성이 모두 평안해졌으니(平君民安), 이 절의 이름을 '영국사(寧國寺)'라 하라."고 한 뒤 직접 쓴 현판을 하사하고 떠났고, 그때부터 이 절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곳'이라는 뜻의 영국사가 되었습니다.

 

이외의 지명에도 공민왕과 관련한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공민왕을 모시고 왔던 육조판서들이 있던 곳이라 하여 ‘육조골’이라 부르며, 궁녀들이 머물던 곳이라 하여 ‘궁터’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는 궁녀가 아닌 후궁이 머물렀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공민왕이 머물던 영국동 근처에는 왕골짜기가 있으며, 영국사 아래의 마을 주민들은 왕이 먹던 물을 마시고 산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지역N문화>

 

<영동 천태산 영국사 경내지도>

 

◆주요 전각 및 불상◆

계월암
鷄月庵
사찰 뒤편 산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작은 암자로, '시냇물에 비친 달'이라는 뜻을 가진 수행처이며,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석종형승탑
石鍾形僧塔
충북유형문화재184호; 원각국사비 뒤쪽에 위치한 사리탑 부도로, 원각국사와 깊은 관련이 있어보이지만 사리의 주인은 알 수가 없습니다. 바닥돌에서부터 머리장식까지 모두 6매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석종형 부도이면서도 다른 탑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연꽃잎도 모두 한 겹으로 표현되어 있어 고려말·조선초에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원구형승탑
圓球形僧塔
충북유형문화재185호; 원각국사비 뒤쪽에 위치한 사리탑 부도로, 원각국사와 깊은 관련이 있어보이지만 사리의 주인은 알 수가 없습니다.  탑의 기단부(基壇部)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8각의 아래받침돌을 세우고, 8각의 윗받침돌을 올려놓은 구조이며, 각 부분의 조각들이 생략되거나 간략화되고, 연꽃잎이 한겹으로 되어 있어 고려말·조선초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원각국사비
圓覺國師碑
보물534호;  사방3칸 사모지붕의 전각 안에 모셔진 원각국사비는 사찰의 동쪽 언덕에 거북이 모양의 받침대 위에 서 있는 비석으로, 어려서 출가하여 선사·대선사가 되었던 명승인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고려 의종 7년(1153년)에 세워진 비석입니다. 목을 길게 뺴고 발톱을 세운 모습을 한 거북은 생동감이 넘치며, 비석을 꽂아두는 비좌는 정교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수(머릿돌)에는 세밀하게 조각된 용 2마리와 중앙에 새겨진 '원각국사비'가 보이며, 비신(비석의 몸체)에는 마모된 글씨로 원각국사의 일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각국사비는 건립 연대가 확실하여 고려 중기 불교사와 조각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비석의 크기나 조각의 정교함을 통해 당시 영국사가 국가적으로 얼마나 위상이 높았던 사찰이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조사전
祖師殿
심검당
尋劒堂
앞7칸·옆4칸 주심포 팔작지붕; 극락보전 남동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조사전과 심검당을 겸하고 있는 ㄱ자 건물입니다. 조사전 은 영국사를 거쳐 간 주요 스님들의 초상화인 진영들을 모신 공간으로, 영국사를 크게 중창했던 고려 시대의 대각국사 의천이나, 원각국사비의 주인공인 원각국사 등의 영정이 상징적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극락보전
極樂寶殿
앞3칸·옆2칸 다포계 맞배지붕; 대웅전과 나란히 위치한 전각으로, 자연석을 주춧돌로 사용하였으며, 민흘림 기둥으로 부드러움을 가했습니다. 내부는 불단을 중심으로 높은 천장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본존불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협시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아미타전, 무량수전이라고도 부릅니다. 
[아미타불: 대승불교에서 서방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주재하며, 한량없는 광명(무량광불)과 무한한 수명(무량수불)을 지닌 부처. 살아있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48가지 큰 원을 세워 수행하여 부처가 되었으며,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통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정토 신앙의 핵심 대상.]
[관세음보살: 대승불교에서 가장 널리 신앙되는 보살로, 중생의 고통스러운 목소리(世音)를 관찰(觀)하여 그들의 고난을 자비로 구제하는 존재. 아미타불의 좌보처로서 33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을 돕는 '구고구난(救苦救難)'의 상징. 관음보살· 관자재보살]
[대세지보살: 서방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보좌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지혜의 보살. 머리의 보관 중앙에 인 보배병(寶甁: 지혜)이 특징이며, 3도(지옥, 아귀, 축생)의 고통을 없애고, 강력한 힘(대정진)으로 마군을 제압하여 중생에게 힘을 주는 보살]
산신각
山神閣
앞1칸·옆1칸 주심포 맞배지붕: 대웅전 뒤편, 가파른 계단을 조금 더 오르면 나타나는 작은 전각으로, 산신과 그 곁을 지키는 영험한 호랑이가 그려진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는데, 대웅전의 칠성탱과 함께 현재 영국사에 보관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불화라고 합니다.  산신각은 불교가 전래되기 전부터 우리 민족이 믿어온 산신 신앙이 불교와 융합된 형태를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대웅전
大雄殿
앞3칸·옆2칸 다포계 맞배지붕; 충북유형문화재61호;  만세루의 누각 아래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영국사의 중심법당으로, 두 단의 축대 위에 세워졌으며, 내부에는 석가삼존불로,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협시인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으며, 후불도인 영산회상도(보물1397호) 외에도 신중탱· 삼장탱· 칠성탱· 독성탱 등의 불화들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영산회상후불탱(靈山會 後佛幀): 17C 이후 크게 유행한 군도형식(群圖形式)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로, 1709년에 인문을 비롯한 민기, 세정 등 불화승(佛畵僧) 3인이 참여하여 그린 그림이며, 17C 전반에서 18C 초반에 이르기까지의 불화양식 흐름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삼층석탑
三層石塔
보물533호; 대웅전 앞에 위치한 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원래 옛 절터에 넘어져 있던 것을 1942년 주봉조사가 이 곳으로 옮겨 복원한 것입니다. 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형식인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춘 완전한 형태이며, 기단과 탑신부가 간결하여, 조형 미술품의 규모가 작아지고 양식도 간략화되던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상하층 기단 네 면에는 큼직한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기단 맨윗돌 모서리를 살짝 치켜올렸고, 특히 1층 몸돌 정면에는 자물쇠와 문고리까지 세밀하게 표현된 문 모양이 조각되어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줍니다. 지붕돌은 완만한 경사를 그리다 네 귀퉁이 끝에서 날렵하게 반전되며 치켜 올라가 있으며,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습니다. 
만세루
萬歲樓
앞5칸·옆3칸 주심포 팔작지붕; 영국사 경내로 들어서며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2층 건물로, 누하진입 방식으로 중심 법당으로 향하는 통로이며, 대웅전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누각 형태의 관문입니다. 세속의 마음을 갈무리하고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서는 공간적 전이의 역할을 하며, 법회나 행사를 위한 강당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은행나무 천연기념물223호; 영국사 입구에서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거대한 은행나무로, 높이 31m, 둘레 11m의 문화적·생태적 가치가 매우 높은 노거수입니다. 2m 높이에서 갈라진 가지는 동서 방향으로 25m, 남북으로 22m 로 퍼져 있으며, 서쪽으로 뻗은 가지 하나가 땅에 닿아 뿌리를 내려, 마치 두 그루의 나무가 연결되어 있는 듯한 웅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국가에 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소리를 내어 운다고 하는 이 은행나무는 단순히 오래된 나무를 넘어, 이곳 사람들에게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추대받고 있습니다.  
일주문
一柱門
앞면1칸 다포계 맞배지붕; 일주문은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가장 첫 번째 문으로,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영국사 일주문은 천태산 등산로 초입을 지나 매표소를 거쳐 약 1km 정도 올라가면 위치해 있으며, 정면에는 '천태산 영국사(天台山 寧國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망탑봉 삼층석탑
望塔峰 三層石塔
보물535호; 영국사에서 동쪽으로 500m 되는 곳의 망탑봉(望塔峰)이라는 작은 봉우리 정상에 위치한 석탑으로, 커다란 자연암인 화강암을 기단(基壇)으로 삼아 그 위에 탑신(塔身)을 올린 것이 큰 특징입니다. 높이는 약 3m이며, 3층의 탑신과 지붕돌(옥개석)로 구성되어 있으며, 석탑 바로 옆에는 거대한 바위가 마치 흔들릴 듯 서 있는 고래 모양의 흔들바위가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습니다.
영국사승탑
寧國寺僧塔
보물532호; 영국사 안에서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언덕 위에 위치한, 높이 약 2.15m의 팔각원당형 석조 불탑으로, 기단부·탑신부·머리장식부로 나뉘어지며 전체적으로 8각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데, 연꽃무늬가 새겨진 기단 위에 팔각 탑신과 옥개석을 갖추어 안정감과 정교함을 보여줍니다. 고려 고종 때 안종필이 임금의 명을 받아 탑과 승탑, 그리고 금당을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주소: 충북 영동군 양산면 영국동길 225, 전화번호: 043-743-3210

 

♣이상으로 충청북도에서 꼭 가봐야 할 사찰 6곳 중 영동 천태산 영국사에 대한 정보를 안내해 드렸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한국불교문화포털, 국가유산포털,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역사문화유산, 지역N문화, 불교신문, 법보신문, 금강신문, 오마이뉴스, 한국일보, 네이버지식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영동영국사 홈페이지>

 

<삼장보살도·건륭26년명동종: 한국학중앙연구원, 영국사승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