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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365/한국사찰 탐방

강원특별자치도에서 꼭 가봐야 할 사찰 6곳: 3. 백담사

by 지오1 2026.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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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의 주요 사찰인 인제 설악산 백담사의 신비로운 창건 역사와 배경, 이름의 유래, 평온한 가람 배치와 옛 숨결이 깃든 소중한 문화유산까지 내설악 천 년 고찰의 모든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3. 백담사(百潭寺) 

인제군 내설악의 깊은 품에 안긴 백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로, 만해 한용운 선사의 자취와 백 개의 웅덩이가 빚어낸 신비로운 전설이 흐르는 사찰입니다. 신라 진덕여왕 1년(647년) 자장율사가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고 세운 '한계사'가 그 시초이고, 그후 끊임없는 화마로 재건을 반복하며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불리다가 1783년 최붕과 운담이 백담사라 개칭하였습니다. 백담사란 이름은 백 개의 담(潭: 웅덩이)이 빚어낸 신비로운 전설에서 유래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거듭되는 화재를 막기 위해 고심하던 중 주지스님의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 "설악산 대청봉에서부터 골짜기를 따라 웅덩이(潭)를 세어 100번째 되는 지점에 절을 지으면 화를 면할 것이다"라고 계시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대청봉에서부터 100번째 웅덩이가 있는 자리에 사찰을 세우고 이름을 '백담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백담사의 가람배치는 일반적인 산지 사찰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백담사는 험준한 산세를 극복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축대를 높이 쌓기보다, 넓은 수렴동 계곡 옆 평탄한 대지를 따라 전각들이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찰 앞에 흐르는 맑은 계곡과 수많은 돌탑은 백담사만의 독창적인 조경 요소가 되어줍니다. 백담사 문화유산으로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보물1182호), 인제봉정암5층석탑(보물1832), 한계사지북삼층석탑(보물1276호) 등이 있습니다. 다른 자랑거리로 백담사 앞 계곡에는 방문객들이 저마다의 소원을 담아 쌓아 올린 수천 개의 돌탑이 장관을 이루는데, 거센 물살에도 무너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돌탑들은 백담사를 상징하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입니다. 또한 백담사는 근대 불교의 거봉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스님이 출가하고 도를 깨우친 곳입니다. 일반 도보로 진입할 수 없는 사찰로서, 전용 셔틀버스를 이용해 접근해야 하는 독특한 입지를 자랑합니다. 

 

백담사와 만해 한용운: 백담사(白潭寺)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이 1905년 출가하여 득도하고, 불교 유신과 민족 독립 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닦은 핵심적인 공간입니다. 1905년 28세의 나이에 백담사에서 연곡 스님을 은사로 불문에 귀의(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습니다. 백담사에서 머물며 불교의 근대화와 민족불교의 발전을 주장하는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여 당시 일제에 의해 왜곡되던 불교를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1910년경(39세) 백담사 오세암에서 참선 중 깨달음을 얻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으며, 이는 이후 자유 문학 시인으로 활동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백담사는 한용운이 민족독립운동의 뜻을 굳건히 하고 저항 시인으로서의 지조를 다진 곳으로, 현재 백담사 내에 만해기념관이 있어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인제 설악산 백담사 경내지도>

 

◆주요 전각 및 불상◆

극락보전
極樂寶殿
앞5칸·옆4칸 주심포 팔작지붕; 백담사의 주불전으로, 내부에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보물1182호) 주불로 계시며, 자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과, 지혜의 상징인 대세지보살을 좌우협시로 모시고 있습니다. 또한 소를 찾아 나서는 깨달음의 과정을 그린 심우도 벽화가 유명하며, 한때 전두환전대통령이 쓴 현판이 달린 적이 있다고 합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木造 阿彌陀如來 坐像 및 腹藏遺物): 1748년(영조 24년)에 제작된 18세기 전반의 대표적인 목조 불상으로, 당당한 어깨와 조화로운 하체 표현이 특징이며, 발원문(2점), 중수 기록(2점) 등.복장유물이 함께 발견되어 제작 시기와 배경이 명확한 가치 높은 문화재입니다.]
삼층석탑 극락보전 앞마당에 위치한 석탑으로, 단정한 조각미와 안정된 비례를 보여주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3층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법화실
法華室
앞5칸·옆3칸 팔작지붕; 극락보전 앞마당 북쪽에 자리한 요사채로, 주로 사찰의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화엄실
華嚴室
앞5칸·옆4칸 맞배지붕; 극락보전 앞 법화실과 마주보는 전각으로, 과거 만해 한용운 스님이 머물며 수행했던 공간이자, 1988년부터 2년 넘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유배 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감로수
甘露水
나한전 남서쪽 근처에 위치한 백담사 청정 약수로, 도리천(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하늘)의 신비스러운 물이라는 뜻의 감로수는 백담사 방문객에게 달콤하고 시원한 청량감을 주며, 석조로 조성된 관세음보살상이 감로수대 앞을 지키고 계십니다. 
나한전
羅漢殿
앞3칸·옆2칸 주심포 팔작지붕; 극락보전 북쪽에 자리한 전각으로, 
[나한: 산스크리트어 '아라한(Arhat)'의 약칭으로, 수행을 통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성자들.]
[나한전: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에 16나한, 500나한 등 나한(아라한)을 모시는 사찰의 전각. 응진전]
만해당
萬海堂
앞6칸·옆3칸 팔작지붕; 나한전 앞에 위치한 전각으로,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의 기념관 및 교육관 등과 함께 만해 선양 사업의 중심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의상·만해연구원이라 적혀있습니다. 
중광산방
中光山房
앞5칸·옆3칸 다포계 팔작지붕; 무금선원 옆에 위치한 전각으로, '걸레 스님'으로 불린 파격적인 선화가, 중광 스님의 예술 세계를 기리는 공간이며, 스님의 독창적인 선화(禪畵) 작품과 묵적 등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찻집 형태의 휴식 공간입니다.
만해기념관
卍海記念館
ㄱ자 다포계 팔작지붕; 범종루 북쪽 옆에 세워진 전각으로,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의 철학, 문학,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공간이며, 그의 친필 유묵, 저서, 관련 연구 자료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농암실
聾庵室
앞7칸·옆4칸 주심포 팔작지붕; 불이문 남쪽 옆에 위치한 건물로, 귀먹을 농(聾), 암자 암(庵), 방 실(室) 자를 쓰며,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를 듣지 않는 고요한 암자(방)'라는 뜻을 지닌, 너와지붕으로 된 찻집입니다. 전통찻집이자 휴식공간이며, 백담다원(百潭茶園)라고 쓴 현판도 함께 걸려있습니다. 
[너와지붕: 두께 3~5cm, 크기 30~60cm 정도의 얇게 쪼갠 나무 판재(소나무, 참나무 등)인 '너와'를 기와처럼 겹쳐 이어 만든 전통 지붕. 건조하면 수축하여 통풍이 되고 비가 오면 습기를 머금어 빗물을 막는 단열 효과가 뛰어남.]
만해적선당
萬海積善堂
앞6칸·옆4칸 주심포 팔작지붕; 만해교육관 동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만해(萬海) 한용운 선사의 넋을 기리고, 선(善)을 쌓는다(積)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매점/기념품점입니다. 
만해교육관
萬海敎育館
ㄱ자 팔작지붕; 산령각 남쪽, 만복전과 옆에 위치한 건물로, 템플스테이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랑채
淨廊舍
금강문 북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수행 공간인 무금선원과 함께 배치되어 있으며, 수행자들의 생활 공간인 요사채입니다
만복전
萬福殿
ㄱ자 팔작지붕; 산령각 남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스님들의 수행공간이자 생활공간이 요사채이며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는 곳입니다.
선열당
禪悅堂
ㅁ자 팔작지붕; 과거 '공양간(식당)'으로 불리던 곳으로, 현재는 규모가 커진 한옥양식 건물이며, 요사채이자 공양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설전
無說殿
앞9칸·옆2칸 다포계 맞배지붕; '말이 없는 전당'이라는 뜻으로, 문자와 언어에 의존하지 않는 불교의 '불립문자(不立文字)' 도리를 상징하는 수행 공간입니다. 템플스테이관으로 사용됩니다.
완허당
玩虛堂
앞6칸·옆2칸 주심포 팔작지붕; 사찰 내 방문객을 위한 기념품으로 기념관 책자, 템플스테이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매점/기념품점으로 운영되는 전각입니다. 템플스테이 공간으로 사용됩니다 .
무산장실
霧山丈室
앞7칸·옆2칸 주심포 맞배지붕; 설악산 백담사 내에 위치한 요사채 공간으로, 조실(祖室)을 지낸 설악 무산(雪嶽 霧山, 조오현) 스님이 머물며 수행하고 후학을 지도하던 처소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스님의 문학적, 불교적 사상이 담긴 공간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경내 요사채 구역에 속해 있습니다. 템플스테이 공간으로 사용됩니다. 
해우소
解憂所
주심포 맞배지붕;  '근심(憂)을 푸는(解) 곳(所)'이라는 뜻으로,  백담사에서 등산로 가는 길에 있으며, 화장실 근처에 다리가 있어 계곡 경치를 감상하기 좋습니다. 
산령각
山靈閣
사방1칸 맞배지붕; 설악산의 산신(山神)과 호랑이를 봉안하여 사찰을 수호하는 외호신을 모신 전각입니다. 일반적인 산신각(山神閣)과 달리 설악산 산신의 높은 격을 고려하여 '산령각'이라는 현판을 걸었습니다. 
[산신각(山神閣): 사찰에서 산신을 봉안하는 불교건축물. 조선시대 이후 불교의 재래신앙 수용력에 의한 호법신중전각으로,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한 산신상 또는 탱화(幀畫)를 모시며, 현재의 산신은 가람수호신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산속 생활의 평온을 비는 외호신(外護神)으로서도 받들어지나, 불교 본연의 것이 아니라 전(殿) 대신 각(閣)을 붙이며, 자식과 재물을 기원하는 산신 기도가 많이 행하여짐.] 
범종루
梵鐘樓
앞3칸·옆2칸 주심포 팔작지붕; 불이문 옆에 위치람 누각으로, 불국정토로 진입하는 구도자를 환영하기 위해 주악을 연주하는 범종이 걸려 있는 누각이며, 사찰의 불교예식에 쓰이는 불전사물인 법고, 목어, 운판도 함께 봉안하고 있습니다. 
불이문
不二門
앞3칸·옆2칸 맞배지붕 솟을삼문; 극락보전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으로, 뒷면은 벽이 없고, 속세와 진리의 세계(불국토)를 나누는 상징적 경계이며, 보통 절과 달리 현판에 '백담사(百潭寺)'라고 적혀 있어 백담사의 주 출입구 역할을 합니다. 
[불이문: 사찰에서 본당(대웅전 등)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산문(). 부처와 중생, 선과 악, 생과 사 등 상대적인 두 가지가 실은 둘이 아닌 하나의 진리(공, 空)라는 ‘불이법문(不二門)’의 가르침을 상징하며, 세속의 분별심을 버리고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섬을 의미. 해탈문.]
무금선원
無今禪院
'시간의 흐름이 멈춘 선방'이란 뜻의 전각으로, 1998년 회주 오현 스님이 개원한 한국의 대표적인 철야 수행 도량입니다. '지금 없다'는 이름처럼 과거와 미래의 망상을 버리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여, 외부와 차단된 무문관(無門關) 정진과 기본 선원 교육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기본선원: 예비스님들이 사미10계를 받고 정식으로 구족계를 받아 비구스님이 되기까지 받는 기본교육과정의 하나로, 첫2년은 여름·겨울 결제 수행정진과 봄·가을 교과안거(교육)를 이수하며, 후2년은 선방에서 4안거, 총8안거를 마치면 구족계를 수지할 수 있습니다. 기본선원은 백담사와 동화사 뿐이라고 합니다.]
금강문
金剛門
앞3칸·옆2칸 맞배지붕; 수심교를 건너 사찰 경내로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문으로, 불교의 수호신인 금강역사가 봉안되어 사찰을 지키고 번뇌를 막는 공간입니다. 중요무형문화재 목조각장 목아 박찬수가 조성한 금강역사와 문수·보현동자상이 있으며, 내설악의 절경 속에 경건한 성역의 시작을 알립니다. 좌측에 밀적금강과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 우측에 나라연금강과 사자를 탄 문수동차가 서 계십니다.
[금강문: 사찰의 일주문 다음에 오는 문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두 명의 금강역사(밀적금강· 나라연금강)를 모시고, 세상의 사악한 세력을 경계하고 사찰로 들어오는 잡신과 악귀를 물리치며, 참배객의 번뇌를 없애고 경건한 마음으로 성역에 진입하도록 통제하는 수문장 역할을 하는 산문.]
우범당
雨帆堂
앞7칸·옆2칸 맞배지붕;  사찰 내 수행 공간 및 요사채의 하나로, 만해 한용운 선사가 머물며 '님의 침묵'을 집필하는 등 수행과 문학 활동을 했던 역사적 장소입니다. 템플스테이 공간입니다. 
무문관
無門關
앞7칸·옆2칸 팔작지붕; 문 없는 문(無門)을 통과한다는 의미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독방에서 스님들이 석 달 동안 외부 출입 없이 철저한 고독과 침묵 속에서 깨달음을 향해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는 밀폐된 선원입니다. 
[문무관: ‘문이 없는 관문’이라는 뜻으로, 선승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의 공안 모음집 ‘무문관(無門關)’에서 비롯하며,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이라고도 부름. 한국 불교의 무문관(無門關) 수행은 작은 방 안에서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차단한 채, 오직 홀로 자신과 마주하는 극한의 수행법
일주문
一柱門
앞1칸 다포계 맞배지붕;  주차장에서 경내쪽에 위치한 백담사의 천 번째 산문으로, 일직선상의 두 기둥(일렬) 위에 지붕을 얹은 구조이며,  세속의 번뇌를 씻고 일심(一心, 한결같은 마음)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내설악백담사(內雪嶽百潭寺)라고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부속암자
附屬庵子
봉정암(鳳頂庵): 해발 1244m에 위치하며,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한국 최고(最高)의 암자이며, 공룡능선 등 절경을 배경으로 한 5층 석탑(봉정암석가사리탑/세존사리탑)이 유명한 대표적인 기도처이자 수행성지입니다.
[인제봉정암오층석탑(보물1832호): 설악산 소청봉 아래(해발 1,244m)에 위치한 높이 3.3~3.6m의 고려시대 석탑으로, 기단부 없이 자연 암석의 정상을 다듬어 2단의 탑신 받침을 만들고 16판의 단판연화문을 새겨 기단을 대체했고, 1층 옥신(몸돌)은 4귀퉁이에 우주(기둥 모양)가 있고 2층부터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며, 노반(머리 장식 받침)과 복발(엎어놓은 그릇 모양) 위에 원뿔형 보주(꽃봉오리 모양)가 놓여 있어 결손 없이 완전한 형태를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고려 후기 석탑의 특징이 있습니다.]
[5대적멸보궁: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대표적인 5곳의 성지. 보통 불상을 모시지 않고 사리탑을 향해 창을 내거나 법당 뒤에 사리탑을 모시는 것이 특징. 통도사· 상원사(오대산 중대)· 봉정암· 정암사· 법흥사]
오세암(五歲庵): 신라 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내설악의 유서 깊은 암자로, 폭설 속에서 부처의 보살핌으로 살아남은 5세 동자의 전설이 깃든 관음성지이자 만해 한용운 스님이 <님의 침묵>을 저술한 곳입니다. 
[5세동자 설화:  조선시대, 설정(雪淨) 스님이 고아가 된 형님의 5살 조카를 데려와 설악산 관음암에서 겨울을 보내던 중 월동 준비를 위해 물치 장터로 떠났으나 폭설로 인해 길에 갇혀 3월이 되어서야 절로 돌아와 보니,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조카는 건강한 모습으로 목탁을 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법당의 어머니(관세음보살)가 밥을 주고 같이 놀아주었다"고 했으며, 이 영험함으로 인해 '관음암'에서 '오세암'으로 이름이 변경됨. ]
영시암 (永矢庵): 백담사에서 오세암/봉정암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유서 깊은 암자로, 조선 후기 성리학자 김창흡이 죽을 때까지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영시(永矢)'라 이름 짓고 은거한 곳입니다. 
한계사지북삼층석탑
寒溪寺址 北 三層石塔
보물1276호; 인제군 한계사 터에 있는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 형식을 보여줍니다. 하층 기단은 4개의 장대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3층 탑신석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우주)이 새겨져 있으며, 옥개받침은 4단으로 처리되어 있어 통일신라 시대 석탑의 양식을 따릅니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형태이나, 남삼층석탑(보물 제1275호)에 비해 기단의 조각이 간략한 편입니다. 1985년 발굴 당시 무너져 있던 것을 1990년 복원했으며, 구조와 기법에서 9세기 신라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주소: 강원 인제군 북면 백담로 746, 전화번호: 033-462-5565

 

♣이상으로 강원특별자치도에서 꼭 가봐야 할 사찰 6곳 중 인제 설악산 백담사에 대한 정보를 안내해 드렸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한국불교문화포털, 국가유산포털,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역사문화유산, 지역N문화, 불교신문, 법보신문, 불교닷컵, 금강신문, 오마이뉴스, 한국일보, 중부매일, 네이버지식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인제 설악산 백담사홈페이지>

<목조아미타여래좌상:강원특별자치도, 극락보전·삼층석탑·불이문·돌탑·금강문·세심교·일주문: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