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대표사찰 보은 속리산 법주사의 역사, 창건 배경, 가람배치, 문화유산 등을 통해 지역 불교문화의 흐름을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1. 법주사(法住寺)
대한불교 조계종 5교구의 본사인 법주사는 속리산 국립공원의 품 안에 자리한 미륵신앙의 요람으로,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창건한 호서 제일의 천년고찰입니다.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법주사라 이름 붙여진 이후, 성덕왕 19년(720)과 고려 태조 1년(918)에 각각 중건되었으며, 문종 때에는 여섯째 왕자인 도생 승통(導生僧統)에 의해 중창이 이루어졌습니다. 사찰이 번성할 때는 60여 동의 전각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이었던 법주사는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으나, 인조 4년(1626)에 벽암대사에 의해 재건되고 그후로도 여러 중창불사를 거쳐 현재 30여동의 건물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법주사라는 이름은 의신조사가 인도(천축국)에서 돌아오면서 나귀에 경전을 싣고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하는데, '법(法)이 머무는(住) 절'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머무는 성스러운 장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기록에도 언급됩니다. 또다른 유래설은 진표율사의 법을 받은 영심 스님 창건설을 빌리는데, 길상사라는 절 이름에서 시작하였고, 그 후 속리사로, 그리고 다시 법주사로 바뀐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법주사의 가람배치는 화엄신앙(대웅보전)과 미륵신앙(용화보전) 축이 직각으로 교차하며 5층탑인 팔상전에서 만나는 독특한 구성이 특징이며, 2개 구성축은 각각 수정봉과 관음봉을 향하고 있어 지형과 교리적 의미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금강문-천왕문-팔상전-쌍사자석등-사천왕석등-대웅보전으로 이어지는 일직선상의 배치를 중심으로 전각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지리적으로는 8개 봉우리가 연꽃잎처럼 사찰을 감싼 불국토의 형국으로도 해석됩니다. 지정문화재로 국보 3건, 보물 13건, 시도유형문화재 20건, 문화재자료 2건을 보유한 법주사는 현재 사적 제503호로, 속리산 법주사 일원은 명승 제6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국의 7대 산지승원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 진표율사의 행적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설화입니다. 진표율사는 전주 벽골군 출신으로 12세에 금산사에서 출가를 하였다. 이 후 변산 선계산의 불사의방(不思議房)에서 각고의 참회고행 끝에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을 친견하고 법을 받게 되었다. 그 후 금산사를 새롭게 중창하며 미륵장륙상을 모시고 점찰법회(占察法會)를 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속에서 ‘속리산을 찾아가 미륵불을 세우라’는 미륵보살의 계시를 받게 되었다. 진표율사는 곧 바로 금산사를 나와 속리산으로 향하는 도중 소달구지를 타고 오는 사람을 만났다. 그때 달구지를 끌던 소들이 진표율사 앞에 무릎을 꿇고 울어 대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달구지를 타고 있던 사람이 진표율사에게 물었다. “이 소들은 어찌하여 울며, 스님은 어디에서 오는시는 길입니까?” 진표율사가 답하기를, “나는 금산사의 진표라는 사람이오. 나는 미륵보살과 지장보살에게서 계법을 받아 절을 짓고 오래 수도할 곳을 찾아오는 중이었소. 이 소들은 내가 계법을 받은 것을 알고 불법에 경배하는 마음에 꿇어앉아 우는 것이오.” 달구지 주인이 진표율사의 말을 듣고 다시 말하기를, “축생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에게 어찌 신심이 없겠습니까” 하고, 곧 스스로 낫으로 자기 머리카락을 잘랐다. 진표율사는 그를 다시 삭발해주고 제자로 삼았다. 이 때문에 속리산은 ‘속세를 떠나는 산’이라는 뜻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주요 전각 및 불상◆
| 대웅보전 大雄寶殿 |
높이 약 19m, 내부 통층인 2층 다포계 팔작지붕; 보물915호 ;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불전 중 하나로 꼽히는 건물로, 법주사의 핵심 전각이며, 내부에는 비로자나불(본존불)· 아미타불(좌협시)· 석가모니불(우협시)의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1360호)이 모셔져 있습니다.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塑造毘盧遮那三佛坐像): 조선 후기 인조 때 조성한 대규모 소조 불상으로, 네모진 얼굴과 평판적인 신체 표현이 특징이며, 임진왜란 이후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입니다.] [대웅보전: 사찰의 중심인 주불전으로, 현세불인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대웅전의 격을 한층 높여 부르는 건물] |
| 삼성각 三聖閣 |
앞3칸·옆2칸 팔작지붕; 명부전 북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내부에는 칠성·독성·산신을 표현한 탱화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삼성각: 사찰에서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 세 분의 성인을 함께 모시는 전각. 불교가 한국의 토착 신앙과 융합된 형태를 보여주며, 사찰 규모에 따라 이 세 성인을 각각 산신각·칠성각· 독성각으로 나누어 모시기도 함] |
| 명부전 冥府殿 |
앞3칸·옆3칸 다포계 겹처마 맞배지붕; 진영각과 삼성각 사이에 위치한 전각으로, 건물 외벽에는 생전의 선업을 권장하는 지옥 세계의 장면들이 그려져 있으며, 내부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존자, 무독귀왕, 그리고 10명의 지옥왕(시왕)이 함께 봉안되어 있고, 1996년에 조성된 지장보살도와 1992년에 주조된 동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명부전: 저승 세계를 관장하는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시는 곳. 시왕전· 지장전] |
| 진영각 眞影閣 |
앞7칸·옆3칸 주심포 맞배지붕; 법주사를 창건한 의신조사(義信祖師)를 비롯하여 전법초조 태고선사 등 법주사의 법맥을 잇는 여러 고승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진영각: 사찰에서 고승의 진영(眞影, 스님의 생전 모습을 그린 초상화)을 모셔놓은 전각. 조사각·조사당] |
| 희견보살상 喜見菩薩立像 |
보물1417호;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이 상은 머리에 큰 향로를 이고 서 있는 모습으로, 부처님께 몸을 태워 공양한다는 '소신공양'의 서원을 상징하며, 국내에서 매우 보기 드문 형태의 불상이라는 점에서 큰 학술적·예술적 가치를 지닙니다. |
| 원통보전 圓通寶殿 |
앞3칸·옆3칸 주심포 사모지붕 ; 보물 제916호; 관세음보살을 주존불로 모시는 전각으로, 건물 내부에는 높이 약 2.8m에 달하는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1361호)이 목조팔각연화대좌 위에 모셔져 있습니다. 1655년(효종 6년)에 제작된 이 불상은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기를 통해 제작 연대가 확실하며, 당시의 독특한 복식 표현과 자비로운 관음보살의 이미지를 잘 보여줍니다. [원통전: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전각. 관음전] |
| 선희궁원당 宣喜宮願堂 |
앞3칸·옆3칸 익공형식 주심포 겹처마 맞배지붕; 대웅보전의 전면 동쪽에 위치한 건물로, 조선 21대 왕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이씨(暎嬪李氏)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곳입니다. 영빈이씨의 위패를 다른 곳으로 모신 후에는 법주사와 관련된 역대 큰스님들의 초상을 모셔둔 ‘조사각(祖師閣)’으로 사용되기도 하여 법주사에서는 ‘구(舊) 조사각’이라고도 합니다. |
| 총지선원 總持禪院 (응향각) |
앞9칸·옆2칸 주심포 맞배지붕 ; 대웅보전 동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예전에 대향각이 있었으나 현재는 총지선원(總持禪院)이라 불리는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응향각(凝香閣): 향기가 응집되는 곳이라는 뜻으로, 사찰에서 주요법당(대웅전)을 관리하고 불공 및 기도를 집전하는 노전(爐殿)스님이 거처하시는 전각. 향로전· 일로향각· 대향각·봉향각] |
| 석옹 石瓮 |
염화실 앞에 위치한 깊이 약 225cm , 윗부분 바깥지름 약 180cm의 석조물로, 몸체를 중심으로 상하 항아리 모양의 돌을 3단으로 쌓은 형태이며, 과거 법주사에 3,000여 명의 승려가 머물 당시 김치를 저장하던 대형 돌항아리입니다. |
| 염화실 拈花室 |
앞5칸·옆3칸 다포계 팔작지붕 ; 사찰 선원(禪院)의 가장 높은 어른이신 조실(祖室)스님이 기거하시는 요사채입니다. [염화실: 염화미소(拈花微笑)' 또는 '염화시중(拈華示衆)'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사찰에서 큰스님(조실 스님· 방장 스님)이 머무시는 방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 방장실· 반야실] |
| 공양간 供養間 |
식사를 준비하는 공간을 의미하며, 주로 방문객과 신도들에게 따뜻한 공양(식사)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 [공양(供養): 부처님(불), 가르침(법), 스님(승)에게 음식, 꽃, 향, 의복 등을 올리는 경건한 행위로, 수행자의 공덕을 쌓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중요한 수행입니다.] |
| 청풍료 淸風寮 |
사찰 경내에 위치한 주요 건물 중 하나로, 주로 스님들의 수행 및 거주 공간으로 활용되는 요사채입니다. |
| 약사전 藥師殿 |
앞3칸·옆2칸 홑처마 주심포 맞배지붕 ; 궁현당 서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중생의 질병을 치유하고 재앙을 없애주는 부처인 약사여래좌상과 약사후불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약사여래(藥師如來): 중생의 육체적 질병은 물론 마음의 병까지 치유하고 재앙을 소멸시켜주는 부처. 동방의 정유리세계에 거주하며, 과거 수행 시절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세운 '약사십이대원'을 통해 현세의 복락과 수명 연장, 깨달음을 돕는 신앙의 대상으로, 불상으로는 보통 왼손에 약함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됨. 약사유리광여래· 대의왕불] |
| 궁현당 窮玄堂 |
앞14칸·옆3칸의 동향의 ㄴ자 건물 ; 충북유형문화재234호; 팔상전 우측에 위치한 건물로, 본래 스님들이 수행하던 선당(禪堂)이었다고 하며, 스님들이 거처하시는 승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 범종각 梵鐘閣 |
앞3칸·옆2칸 팔작지붕; 팔상전 동쪽 정면에 위치한 건물로, 1976년 기존 종무소를 철거한 자리에 새로 건립되었으며,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네 가지 법구인 불전사물 즉 범종· 법고· 운판· 목어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사물은 새벽 예불과 사시 공양, 저녁 예불 때 중생 구제의 의미를 담아 울려 퍼집니다. [범종(梵鐘): 주로 동(铜)과 주석을 합금한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종으로, 아침에 28번, 저녁에 33번 종의 바깥쪽에서 당좌(撞座)라고 불리는 부분을 치며,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고 천상계까지 소리를 전달하여 모든 존재를 깨우침으로 인도] [법고(法鼓): 원통형 나무 양면에 소가죽을 댄 구조로, 큰 북을 울려 불법의 진리를 세상에 널리 퍼뜨려 땅 위에 사는 모든 축생(짐승)을 교화] [목어(木魚):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아 항상 수행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물고기 모양의 나무 도구로, 물속에 사는 물고기를 구제] [운판(雲版): 구름 모양의 청동이나 철판으로, 하늘을 나는 날짐승을 구제하며, 선종 사원에서는 공양 시간(식사)을 알리는 신호로도 사용되었음] |
| 쌍사자석등 雙獅子石燈 |
국보5호; 팔상전 북쪽에 위치한 통일신라의 석등으로, 통일신라 일반적인 석등의 8각 기둥 대신 두 마리의 사자가 마주 보고 서서 앞발로 등불을 받치고 있는 독특한 형태가 특징이며, 한국에 현존하는 사자 조각 석등 중 가장 오래된 걸작입니다. |
| 팔상전 捌相殿 |
1층(사방5칸, 주심포), 2~4층(한 층 오를수록 양 끝이 반 칸씩 줄어 4~2칸, 공포가 기둥위에 놓인 다포계) 5층(사방1칸, 다포식) 사모지붕; 국보55호; 한국에 현존하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내부가 한 통으로 트인 가운데 심주를 중심으로 사방에는 사천주라 불리는 네 개의 기둥을 세워 4면의 벽을 만들고, 한 면에 2점의 팔상도를 배치하였는데, 동쪽의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이라고 하는 입태(入胎)를 시작으로 동에서부터 남·서·북으로 돌아가며 8폭의 탱화를 배치했습니다. 사방 각 면에 걸린 2폭의 팔상도 앞의 불단에는 열반상 또는 삼존불상 등을 모시고 앞쪽에 오백나한상을 배치하였습니다. 1968년 해체 보수 시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당시의 불교 공예 기술과 탑 건립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①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 ②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에게서 태어나는 장면 ③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궁궐의 네 문밖으로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장면 ④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 ⑤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설산에서 고행하는 장면 ⑥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보리수 아래에서 마귀를 항복시키는 장면 ⑦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장면 ⑧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장면 [팔상전: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8가지 핵심 장면(팔상도)으로 그려 모신 전각.] |
| 사천왕석등 四天王 石燈 |
보물15호; 팔상전의 서쪽에 위치한 높이 3.9m의 통일신라시대 석등으로, 8각 평면을 기본으로 하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 4면에는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사천왕상이 돋을새김되어 있습니다. |
| 사천왕문 四天王門 |
앞5칸·옆2칸 다포계 맞배지붕; 보물; 금강문을 지나 팔상전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 중앙 통로인 어칸 양쪽 2칸에는 이 5.7m, 둘레 1.8m의 국내 최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되는 진흙 소조 사천왕상(보물)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어칸을 들어서며 좌측에 용과 여의주를 든 서방광목천왕과 보탑을 든 북방다문천왕이 계시며, 우측엔 비파를 든 동방지국천왕과 보검을 든 남방증장천왕이 계십니다. [사천왕문: 일주문과 금강문 다음에 위치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네 명의 천왕(사천왕)을 모신 공간으로, 사찰의 경계를 지키고, 도량 내의 악귀를 물리쳐 신성한 청정도량으로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금강문이 없을 경우 금강문의 기능까지 대신하여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며, 금강역사(인왕상)을 별도로 모시거나 문에 금강역사의 그림을 그려 넣어 수문장 역할을 겸하게 합니다.] |
| 금동미륵대불 金銅彌勒大佛 |
약 8m 높이의 화강석 기단 위에 세워진, 높이 약 33m의 세계 최대 규모 청동 불상으로, 신라 진표율사가 세운 불상의 전통을 이어, 1964년 근대 조각가 김복진이 설계한 시멘트 불상을 거쳐 청동으로 제작되었으며, 이후 2002년, 청동 표면에 약 80kg 이상의 금을 입혀 현재의 화려한 금동미륵대불로 완성되었습니다. [미륵불: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후 56억 7천만 년 뒤 사바세계에 하생하여 성불하고, 3번의 설법(용화삼회)으로 모든 중생을 구원할 것으로 예언된 미래의 부처님으로, 고통받는 중생에게 희망을 주는 자애(慈)의 메시아적 존재이며, 도솔천에서 수행하다 내려올 것으로 믿어집니다.] |
| 능인전 能仁殿 |
앞3칸·옆2칸 이익공 홑처마 맞배지붕; 충북유형문화재232호; 세존사리탑과 기록이 적힌 세존사리비(世尊舍利碑)를 뒤편에 모신 건물로, 과거에는 '사리각'(법주사전경도)이라 불리며 사리탑에 예배하는 적멸보궁의 역할을 했으나, 현재는 석가여래의 별칭인 '능인'을 따서 능인전이라 부르며, 건물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좌우협시인 미륵보살·갈라보살, 그리고 16나한상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 충북유형문화재16호): 고려 공민왕 11년(1362년) 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했다가 돌아오다 양산 통도사에서 모셔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1괴를 봉안] [능인(能仁): 능히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이롭게 하는 사람이란 뜻의 석가모니의 별칭으로, 능히 사바세계의 온갖 괴로움을 참아낼 뿐 아니라 그 괴로움 속의 중생들을 견뎌낼 분이라는 뜻] |
| 사리각 舍利閣 |
앞4칸·옆2칸 팔작지붕; 능인전 옆에 위치한 전각으로,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 마애여래의좌상 磨崖如來倚坐像 |
보물216호; 사리각 옆 '추래암'이라 불리는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높이 약 5~6m 의 고려시대 불상으로, 일반적인 좌상과 달리 의자에 앉은 '의좌' 자세를 취하고 있어 독특하며, 잘록한 허리와 미려한 옷주름, 온화한 미소를 띤 얼굴이 특징입니다. [마애여래: '마애'는 바위 절벽을 뜻하고, '여래'는 깨달은 자를 의미하여, 자연 암벽이나 절벽에 새긴 부처(여래)의 모습을 말합니다. ] |
| 석연지 石蓮池 |
국보64호; 신라 성덕왕 19년(720년)경에 조성된, 높이 1.95m, 둘레 6.65m 의 화강암 재질의 석조 연못으로, 8각 받침돌 위에 구름무늬가 새겨진 사잇돌과 거대한 몸돌이 놓여 있어 마치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연꽃이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줍니다. 원래 이 석연지는 법주사의 본당이었던 용화보전이 있었을 때 그 장엄품을 설치했던 것으로, 구품 연화장 환희원만 영원무궁 상품상생 광도중생 무량수의 감로천입니다. [용화보전(龍華寶殿):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彌勒佛)을 모시는 전각] |
| 당간지주 幢竿支柱 |
사천왕문을 지나 경내 왼편; 고려 목종 7년(1006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당간지주로, 기단부는 사각형의 돌을 결구해 구성되어 있으며, 원래 있던 신라시대 지주에 근래 복원하여 세운 철당간까지 함께 보존된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당간지주: 절 입구에 세워져 큰 행사나 의식 때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기 위해 깃발 장대(당간)를 지탱하는 두 개의 돌기둥입니다. 당은 부처님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고, 법회 등의 행사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매다는 깃발입니다. ] |
| 철확 鐵鑊 |
보물1413호; 금강문(金剛門) 좌측에 위치한 높이 120㎝, 지름 287㎝, 두께 10.8cm의 단순 구조의 쇠솥으로, 신라 성덕왕 때 주조되었다고 전해지며, 신도 3만 명이 먹을 장국을 끓이고,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이용하던 솥이라고 전해집니다. |
| 금강문 金剛門 |
앞3칸·옆2칸 다포계 겹처마 맞배지붕; 법주사 경내에 들어서면 처음 맞이하게 되는 건물로, 중앙 통로로 들어서면 좌측에 나라연금강역사와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이 계시며, 우측엔 밀적금강역사와 사자를 탄 문수보살이 계십니다. [금강역사(金剛力士): 불법(佛法)을 수호하고 사찰을 지키는 외호선신(外護善神)으로, '인왕역사'라고도 불리며, 손에는 번뇌를 깨뜨리는 무기인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사찰 입구 양옆에 배치되어 악귀의 침범을 막는 수문장 역할을 함.]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 우주의 시작과 공격을 상징히며, 입을 크게 벌린 형태(아형:阿形)로, 아금강역사라고도 함] [밀적금강(密迹金剛): 우주의 끝과 방어를 상징하며 부처님의 비밀스러운 사적을 지키는 역사로, 입을 굳게 다문 형태(훔형, 吽形)인 흠금강역사라고 함] |
| 일주문 一柱門 |
정면1칸; 일주문은 한 줄로 된 기둥의 문이라는 뜻이며,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 중 첫 번째 문으로, 법주사 일주문에는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
| 신법 천문도 병풍新法 天文圖 屛風 |
보물848호; 성보박물관; 조선 영조 18년(1742년) 관상감에서 황도 남북의 별자리를 그린 8폭 병풍으로, 높이 183cm, 너비 451cm이며, 현재까지 알려진 쾨글러의 천문도 중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사본으로 평가됩니다. |
| 괘불탱 掛佛幀 |
보물1259호; 성보박물관; 영조 42년(1766년) 두훈을 비롯한 13명의 화승이 제작한 대형불화로, 세로 약 14.5m, 가로 약 6.5m 에 달하는 거대한 화폭에 보살 형태의 본존을 단독으로 그린 독존도 형식입니다. 화면 가득 채워진 본존불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양손에 꽃가지를 들고 있으며, 그 웅장한 규모로 유명합니다. [괘불탱: 석가탄신일이나 큰 야외 법회(영산재, 수륙재 등) 때 법당 앞뜰에 걸어두는 높이 10m 이상의 대형 불화] |
| 동종 銅鍾 |
보물1858호; 성보박물관; 1636년(조선시대)에 제작된 전형적인 한국 전통양식을 따른 범종으로, 높이 76cm , 입지름 48.1cm 크기이며, 형태적으로는 단룡(몸이 하나인 용)과 음통을 갖춘 용뉴를 보이며, 종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각각 상대와 하대를 두르고, 상대(종의 맨 위를 둘러싼 띠 모양 장식) 아래 사방으로 배치된 연곽(사각형 틀)과 그 안에 각 9개씩의 연뢰(유두: 연꽃봉오리 장식)를 배치한 것이 특징입니다. [동종: 대중에게 시간을 알리거나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는 법구사물 중 하나. 범종] |
| 복천암 수암화상탑福泉庵 秀庵和尙塔 | 보물1416호; 복천암 동쪽 약 200m 지점에 위치한 조선 시대의 승탑(부도)으로, 탑신에 '수암화상탑(秀庵和尙塔)'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나란히 건립된 '학조화상탑'과 함께 조선 전기 승탑의 양식을 잘 보여줍니다. |
| 복천암 학조화상탑福泉庵 學祖和尙塔 | 보물1418호; 복천암 동남쪽 구릉에 위치한 높이는 2.96m의 8각 원당형부도로, 탑비가 부족한 조선시대 승탑들 사이에서 주인공과 건립 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습니다. |
| 산내암자 | 복천암, 중사자암, 여적암, 탈골암: 법주사의 주요 산내 암자로, 특히 중사자암은 조선 선조 임금이 즐겨 찾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관련 문화재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정암: 법주사 경내에 위치하며 비구니 스님들의 수도처로 운영되는 곳입니다. 탈골암: 통일신라 성덕왕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유서 깊은 암자입니다. |
주소: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전화번호: 043-542-5921
♣이상으로 충청북도에서 꼭 가봐야 할 사찰 6곳 중 보은 속리산 법주사에 대한 정보를 안내해 드렸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한국불교문화포털, 국가유산포털,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역사문화유산, 지역N문화, 불교신문, 법보신문, 불교닷컵, 금강신문, 오마이뉴스, 한국일보, 네이버지식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보은법주사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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