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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365/한국사찰 탐방

경상남도에서 꼭 가봐야 할 사찰 6곳: 6.표충사

by 지오1 2025.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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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은 경상남도 대표 사찰 표충사를 소개해 드리며, 사찰의 창건, 전해오는 이야기, 주요 전각 및 불상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6. 표충사 (表忠寺)

경남 밀양시의 재약산(영남알프스)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표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소속 사찰로,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입니다. 본래 654년 원효대사가 지은 죽림사가 있었는데, 통일신라 흥덕왕 4년(829)에 왕의 셋째 아들이 병으로 고생할 때 이곳의 영정약수를 먹고 병이 나았다고 해서 영정사라 이름을 바꾸었고, 헌종 5년(1839)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에 공을 세운 사명대사 유정을 추모하기 위해 표충사당(表忠祠堂)을 짓고 표충사라 하였다고 합니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후 일본에 외교사절로 파견되어 일본에 억류된 조선인 포로 약 3천명을 석방받아 데려올 정도로 외교적 수완도 뛰어났음을 보여줍니다. 사찰 내부에는 전통적인 전각 외에도 사명대사의 유품과 관련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어, 불교뿐 아니라 조선 유학사상과 의병사까지 아우르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표충사 가람 배치는 일반적인 사찰들과는 달리 사당 영역이 포함되어 있어, 표충사당 중심의 사당 영역, 삼층석탑 중심의 석조건축 영역, 대광전 중심의 사찰건축 영역의 세 영역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주요 문화재 및 건물로는 국보 제75호인 청동함은향완(靑銅含銀香垸)과 보물 제467호인 삼층석탑이 있으며, 석등 · 표충서원 · 대광전 등의 지방문화재와 25동의 건물, 사명대사의 유물 300여 점이 보존되어 있고, 표충사 일원은 1974년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임진왜란에 패한 후 화친을 청하는 일본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사명당은 일본에 사신으로 보내졌습니다. 생불이라 불리는 사명당이 온다는 소식에 꺼림직한 일본은 그를 시험할 여러 술수를 준비해놓았습니다. 일본에 도착한 사명당이, 지나가는 길에 세워진 병풍에 적힌 장시를 전부 암송하여 모두를 놀래키자 왜왕은 사명당을 무쇠로 만든 방에 묵게 하고, 숯불을 피워 무쇠방을 달구어 사명당을 태워서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명당은 ‘빙(氷)’ 자를 천장에 써 붙여 도술(道術)을 부렸고, 왜왕이 방문을 열었을 때 사명당의 수염과 눈썹에 고드름이 달려 있었습니다. 놀란 왜왕이 또 다시 사명당을 죽일 작정으로, 숯불로 무쇠 말을 벌겋게 달군 후 사명당에게 올라타 보라고 요구하자 사명당은 비를 내려 불에 달구어진 무쇠 말을 식혔고 비를 계속 내려 왜국을 물에 잠기게 했습니다. 마침내 왜왕은 항복했고, 사명당은 항복문서와 조공을 바치는 조건으로 비를 멈추어주며 꾸짖었습니다. "조선엔 나 같은 생불이 수천이요, 오랜 역사와 문화는 천하제일이다. 다시 조선을 침범할 생각을 하면 우리 일천 생불이 쳐들어와 왜국을 바다로 만들 터이니 다시는 반역을 꾀하지 말라.” 이후 왜왕이, 떠나려는 사명당을 백 리 밖까지 전송하며 보물을 바치려 하자, "나에게 이런 것들은 모두 헛되도다. 대신 포로로 잡혀온 조선인들을 풀어달라."라고 하여, 일본에 잡혀있던 조선인 3천명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경남 밀양시 동부동안길 4에는 땀 흘리는 비석으로 유명한 표충비가 있습니다. 사명대사 유정(惟政)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742년에 세운 비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5호로 지정되었으며, 얼음골 · 만어사와 더불어 밀양의 3대 신비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표충비는 나라에 큰 어려움이나 전쟁 등 불안한 조짐이 감지될 때면, 비석의 표면에서 자연스럽게 땀방울처럼 물방울이 맺히고 흘러내린다고 전해지는데, 이 현상은 특히 비석의 네 면 전체에서 몇 시간 동안 지속되지만 글자의 획 안이나 머릿돌에서는 물기가 비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3면에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행적을 기록하여 일명 삼비(三碑)라고도 불이는표충비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1910년 국권 피탈, 1945년 해방, 1950년 6.25 동난, 1961년 군사정변 등 30여 차례에 걸쳐 국가적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땀 흘리는 현상이 관찰됐습니다. 표충비는 정면에는 ‘유명 조선국 밀양 표충사 송운대사 영당비명병서(有明朝鮮國密陽表忠祠松雲大師靈堂碑銘幷序)’가 새겨져 있으며, 뒷면과 옆면에는 ‘서산대사 비명’과 ‘표충사(表忠祠) 사적기’가 음각되어 있습니다. 

 

<밀양 재약산표충사 경내지도>

 

◆주요 전각 및 불상◆

대광전 앞5칸·옆3칸 다포계 팔작지붕; 시도유형문화재131호; 대웅전을 대신하는, 표충사의 중심법당으로, 목조석가삼불좌상(경남유형문화재457호)인 본존 석가모니좌상과 좌우협시 약사여래·아미타여래를 함께 봉안하고 있으며, 화려하고 다채로운 조선 후기 단청 기법을 보여 줍니다. 불단 위 액자 형태로 봉안된 아미타삼존탱(경남유형문화재466호)은 화면 중앙에 입상의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좌우에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묘사하였는데, 일종의 아미타내영도와 같은 성격에 괘불탱과 유사한 구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대광전(大光殿):  "큰 광명의 전각"이라는 뜻으로, 주로 화엄종의 근본불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는 법당. 부처님의 지혜와 광명이 가득한 공간을 상징하며, 대광명전·대적광전이라고도 불립니다.]
산신각 앞2칸·옆1칸 맞배지붕; 대광전 뒤편에 위치란 전각으로, 산령각과 독성각을 겸하며, 호랑이와 산신이 그려진 산신탱과 홀로 깨달음을 얻은 나반존자가 그려진 독성택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팔상전 앞3칸·옆3칸 주심포 팔작지붕; 경남문화재자료141호; 부처님이 중생 제도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뜻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로, 영산전이라고도 하며, 중앙수미단 위에 석조석가여래좌상(경남유형문화재458호), 후면에 석가여래후불도, 그리고 부처의 여덟 생애 장면을 탱화로 구현한 팔상도를 비롯한 다채로운 불화를 소장합니다.  석조석가여래좌상은 석굴암 불상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고려 10~11세기 불상의 새로운 특징을 보여주어 고대 불교조각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팔상도(八相圖):  ①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상 ② 룸비니 동산에 내려와서 탄생하는 상 ③ 사문에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상 ④ 성을 넘어가서 출가하는 상 ⑤ 설산에서 수도하는 상 ⑥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상 ⑦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상 ⑧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상]
관음전 앞3칸·옆2칸 팔작지붕;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상징하는 42수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좌우협시 남순동자·해상용왕을 함께 모시며, 후불탱화로 천수천안관세음보살탱화가 봉안되어 있으며, 관음보살이 주원융통(周圓融通)하게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는 분이라는 뜻에서 원통전이라고도 합니다.
[관음보살: 아미타불의 좌보처로서 아미타불의 뜻을 빌어 대자대비(大慈大悲) 를 근본 서원으로 삼아 중생을 보살피고, 극락정토(極樂淨土)에 왕생하는 이들을 인도하는 보살]
명부전 앞3칸·옆2칸 팔작지붕; 경남문화재자료143호;  목조지장보살상(경남유형문화재459호)·석조시왕상(459호)·지장보살도(경남유형문화재469호)를 함께 봉안한 전각으로, 사후세계 관념이 집약된 영혼 기원 공간입니다. 표충사지장탱이라는 정식 명칭을 갖은 지장보살도는 화면 상단 중앙에는 결가부좌한 지장보살을, 화면 하단에는 도명존자·무독귀왕·2대 보살·2천왕을, 화면 상단 지장보살 좌우에는 2보살· 2천왕을, 그 후면에는 동자·동녀·용왕 2위를 각각 3/4 측면관의 모습으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상노전 앞3칸·옆2칸 팔작지붕; 대웅전을 관리하는 스님들이 지내시는 요사입니다.
우화루  앞7칸·옆2칸 맞배지붕; 꽃비가 온다는 뜻의 우화루(雨花樓)는 대광전과 마주하며, 대광전에 이르는 관문입니다. 
[불이문: 대개 누각 형태로 지어지며, 사찰의 중심 법당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문 역할을 하는 전각으로, 속세와 부처님의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이자 번뇌를 넘어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상징하며, 불이문을 통과하면 바로 중심법당 앞마당에 이르게 됩니다. 우화루·만세루·보제루·침계루·안양루 등]
범종루 앞3칸·옆2칸 팔작지붕; 불교의식에 쓰이는 불전사물인 법고·범종·목어·운판을 모시는 2층 누각으로, 1층에는 범종, 2층에는 법고ㆍ목어ㆍ운판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삼청각
(三淸閣)​
앞5칸·옆4칸 맞배지붕; 승님들의 교육기관인 강원으로 사용되는 전각으로,  강원은 불교 경전의 내용과 교리를 가르치고, 승려들의 학문적 소양을 키우는 역할을 합니다.
응진전 앞3칸·옆1칸 맞배지붕; 본존불인 석조석가모니불좌상과 좌우협시 미륵보살좌상·제화갈라보살좌상을 모신 법당으로, 나한전이라고도 부르며, 다수나한성, 양끝에 범천(梵天)·제석천(帝釋天), 그리고 1942년에 조성된 후불탱 영산회상도를 함께 봉안을 해놓은 곳입니다.
영정약수 응진전 옆; 표충사의 감로수가 나오는 곳; 신라 성덕왕 때 나병에 걸린 셋째 아들이 이 약수를 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영각 앞5칸·옆2칸 맞배지붕; 경남유형문화재268호;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를 비롯해 표충사의 고승(高僧)의 영정을 봉안한 법당입니다. 
칠성전
(삼성각)
앞3칸·옆2칸 팔작지붕; 무병장수를 장관하는 북두칠성을 모시는 전각으로, 산신탱·칠성탱·독성탱 등을 함께 봉안하고 있습니다.
만일루 팔작지붕; 경남문화재자료142호; 아미타불과 아미타후불탱(경남유형문화재468호)을 봉안한 전각으로, H자형의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아미타불의 48원을 상징하는 48칸과 108번뇌를 상징하는 108평으로 되어있습니다. 무량수각·서래각이라고도 불리며, 중생구제의 만일회가 탄생하고, 선방으로도 사용된 곳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대종사가 만년을 보내신 곳입니다. 아미타불회도(경남유형문화재468호)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 대세지, 문수·보현, 준제·지장보살 등의 6대 보살,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가섭·아난 등 6대 제자, 4천왕· 2금강 등을 대칭으로 그려 넣은 탱화입니다.
[준제보살(准提菩薩): 여러 모습의 관세음보살 중 18개의 팔을 가진 관음보살로, 특히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며, 중생의 소원을 성취시켜 주고, 번뇌와 고통을 없애줍니다.]
시민선방 앞7칸·옆3칸 맞배지붕; 대홍원전(大弘願殿) 편액이 걸린 당우로, 죽원정사(竹園精舍)라고도 부르며, 금동지장보살좌상과 아미타후불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표충사의 옛이름이 죽원(죽림)정사었고, 옛 사명을 기억하기 위해 큰 방을 죽원정사라 부르게 되었으며, 재가불자님들에게 개방하여 명상도 하고 경전도 보고 차도 마시는 공간으로 사용됩니다. 
공양간 앞5칸·옆2칸 맞배지붕; 밥을 짓는 공간뿐만 아니라 스님들이 수행의 일환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는 공간, 더 나아가 부처님이나 스승, 조상에게 음식, 옷, 재물 등을 바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수선당 앞3칸·옆2칸 맞배지붕; 수선당(修禪堂)은 선을 닦는 집이라는 뜻으로, 스님들이 참선하시는 공간입니다.
원통당 앞5칸·옆2칸 팔작지붕; 사명대사 유정 · 서산대사 휴정 · 기허당의 영정을 모신 전각으로, 스님들이 수행도 하며 생활하시는 승방으로 쓰입니다. 
종무소 앞5칸·옆2칸 주심포 맞배지붕; 기도 접수 등 표충사의 모든 사무와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곳입니다.
사천왕문 표충사 경내로 들어오는 세 번째 삼문으로, 가람과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목조상과 탱화로 모셔져 있습니다. 천왕문은 악귀를 내쫓아 청정도량(淸淨道場)을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엄숙하게 하여 사찰의 신성함을 심어주어 수행자의 마음 속에 깃든 번뇌와 좌절을 없애 한마음으로 정진하게 합니다.
표충서원. 앞5칸·옆3칸 팔작지붕; 경남유형문화재52호;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서 나라를 구하는데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사명대사·기허당 3대사의 충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1971년에 표충서원을 절의 서쪽에 위치한 팔상전으로 옮기고 서원건물을 팔상전으로 대체하여, 현재의 건물 구성 및 배치는 원래의 서원형태를 찾아볼 수 없으며, 일반적인 서원의 구성 및 배치와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표충사당 앞3칸·옆2칸 다포계 팔작지붕; 임진왜란 승병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四溟大師) 유정의 충훈(忠勳)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입니다.
박물관 앞7칸·옆3칸 팔작지붕;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관련 유물을 보존전시하기 위해 건립된 호국박물관(表忠祠護國博物館)으로, 유물관(遺物館)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목조관음보살좌상(경남유형문화재460호), 석조지장보살반가상(경남유형문화재461호), 아미타구품탱(경남유형문화재467호), 
수장고 앞5칸·옆2칸 맞배지붕; 사찰 내 유물 보관 시설로, 표충사에 소장된 사명대사의 법복이 수장고 부족으로 인해 바닥에 방치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설법전 앞7칸·옆4칸 맞배지붕; 표충사당과 마주하고 있는 전각으로, 현판 좌로부터 중의당·무설전·대흥불법도량 현판이 걸려있으며, 설법전 현판은 건물 뒷편에 걸려 있습니다. 
기념품관 앞5칸·옆2칸 맞배지붕; 표충사 기념품도 사고 차도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사자평다실
가람각
(伽藍閣)
사방1칸 맞배지붕; 절(사찰)을 수호하는 신을 모신 전각으로, 수충루 들어서기 전 우측, 들어오 후 죄측 이렇게 안과 밖에 두개 있으며, 범어 "상가라마(sangha-arama)"를 줄인 말인 가람은 승려들이 머무는 공간, 즉 사찰을 뜻하므로 가람각은 사찰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신을 모시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충루 앞3칸·옆2칸 팔작지붕; 일주문 다음에 오는, 해탈의 두번째 삼문인 수충루(酬忠樓)는 충혼을 상징하며 표충사당으로 들어서는 문으로, 문을 지나 왼편으로 표충사원 표충사당 유물관 등 사명대사를 기리는 전각들이 이어집니다. 
템플스테이관 2005년에 템플 스테이[전통 산사 문화체험] 운영 사찰로 지정, 운영되기 시작하였으며, 2006년에는 약 2,000여 명이 템플 스테이에 참가하는 등 전국 템플 스테이 모범 운영 사찰로 선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전국 템플 스테이 대표 사찰로 지정되었습니다.
영사각 앞3칸·옆칸 맞배지붕; 일주문과 수충루 사이 있는 비각으로, 공덕비들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일주문 재악산 표충사(載岳山 表忠寺) 현판이 달린 표충사의 첫 번째 산문으로, 절에 들어서기 전 온갖 번뇌를 씻은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있습니다.
[일주문: 기둥이 일렬로 서있는 문이라는 뜻으로, 도량의 가장 바깥에서 사찰과 사찰이 아닌 곳의 경계를 나타내는 문. 사찰에 가면 제일 먼저 일주문을 지나고 해탈을 구하고자 하는 천왕문을 지난 후 불이의 경지인 불이문이 나옴]
삼층석탑 보물467호; 높이 7.7m; 만일루 앞; 사찰 경내에 위치한 남북극시대 통일 신라 삼층 석조 불탑으로, 다른 신라 석탑과 달리 받침돌이 단층으로 되어 있고 1층 몸돌이 비교적 크며, 탑신부는 오를수록 몸돌의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고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돌로 되어 있습니다. 829년(흥덕왕 4)에 인도의 승려 황면선사(黃面禪師)가 현재의 자리에 중창하여 영정사(靈井寺)라 이름을 고치고 3층석탑을 세워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것으로 전합니다.
석등 경남유형문화재14호; 표충사 경내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만일루 앞마당 삼층석탑 동쪽에 서있는 석등으로, 8각형의 간주석(竿柱石)을 갖춘 기단 위에 화사석(火舍石)과 옥개석, 정상에 보주를 올린 통일신라 때 석등입니다.
청동함은향완 보75호; 청동 은입사 향완(香垸)은 1177년(명종 7)에 제작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고려시대 향로로, 청동 재질에 은을 사용한 은입사 기법으로 문양을 새긴 향로를 의미합니다.
부속 암자 대원암(비구니사찰)·내원암(해산스님 수행담)·한계암(혜각스님·석정스님 묵언정진하신 곳)·서상암(독립운동 산실)·청하암(신생 암자)·적조암 등 7개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구천리 23),  전화번호: 055-352-1150

 

♣이상으로 경상남도에서 꼭 가봐야 할 사찰 6곳 중 표충사에 대한 정보를 안내해 드렸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한국불교문화포털, 국가유산포털,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디지털밀양문화대전, 역사문화유산, 지역N문화, 불교신문, 법보신문, 대순회보, 네이버지식백과/사전, 위키피디아 >

<출처: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