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사찰 탐방: 경주 토함산 불국사의 건축미와 역사, 그리고 전해 내려오는 흥미진진한 설화를 한눈에 만나보세요.
1. 불국사 (佛國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는 토함산(兜率山) 자락에 자리한 통일신라기 사찰로,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따르면 신라 법흥왕15년(528년)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迎帝)부인의 발원(發願)으로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574년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只召)부인이 절을 크게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주조해 봉안했고, 문무왕 10년(670년)에는 무설전을 새로 지어 《화엄경(華嚴經)》을 강설(講說)하였으며, 경덕왕10년(751)에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삼국유사》에는 앞부분이 빠지고 그저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했다고 나옵니다. 통일신라 전형적 가람배치를 보여주는 불국사의 가람배치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한 불교 우주관을 바탕으로 하며,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다보탑, 서쪽에는 석가탑을 배치하여 석가탑과 다보탑이 마주 보며 다리를 건너는 듯한 구성을 이루는데, 두 탑은 『법화경』의 내용, 즉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의 설법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이 옳다고 증명한다는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대웅전 앞 연못과 청운교·백운교는 현실과 이상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조형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불국사는 역사적·학술적인 가치를 인정 받아 절 자체가 사적502호(역사상 중대한 사건과 시설의 자취)로 지정되었으며, 불국사가 소장하고 있거나 관련된 문화재로는 국보 8점· 보물 6점· 지방유형 문화재 1점이 있습니다. 또한 불국사 부속암자 석굴암과 함께 신라 불교 예술의 정수로 평가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김대성의 불국사 건국 설화입니다. 신라 경주 모량리에 경조라는 여인에게, 큰머리에 평평한 이마를 가져 큰 성(城)처럼 생겼다 하여 대성(大城)이라 이름지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너무 가난하여 부자인 복안의 일을 해주며 살다가, 복안이 조금 떼어준 밭을 일구며 살아가던 중, 경주성 안에 흥륜사(興輪寺)에서 육륜회(六輪會)란 모임을 하기 위해 점개라는 스님이 시주를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복안이 베 50필을 시주하자 점개스님이 '하나를 시주하면 만 배로 돌아온다'고 덕담해주었습니다. 우연히 이 말을 들은 대성이 어머니 경조에게 "하나를 시주하면 만 배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지난 생에 닦은 덕이 없기에 이번 생에 가난한가 봅니다. 다음 생을 위해서라도 주인에게 받은 밭이라도 시주하면 어떨까요?”라고 하니 경조가 흔쾌히 허락하였습니다. 대성이 점개스님에게 밭을 시주하고 덕담을 받은 얼마 후 대성은 그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날 밤 조정의 대신 김문량의 집에 '모량리의 대성이가 태어날 것이다'라는 소리가 들렸고, 김문량의 부인은 정말 열 달 뒤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기가 7일 만에 편 손바닥에는 신기하게도 ‘대성(大城)’이라는 두 글자가 써있었고, 김문량은 대성 전생의 어머니 경조를 데려와 두 부인에게 대성을 키우게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대성이 곰사냥을 하였고, 그날 꿈에 곰이 대성일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대성은 "잘못하였으니 제발 살려주시오. 나는 지난 생의 부모와 이번 생의 부모를 함께 모시고 있으니 내가 죽으면 절대 안 되오."라며 애걸하자 곰귀신은 “너를 꼭 죽이려 하였는데 사정이 딱하구나. 그렇다면 나를 위해 절을 지어 내 혼을 위로해 주겠느냐?”했습니다. 대성은 곰을 잡은 곳에 장수사(長壽寺)라는 절을 지어 곰의 명복을 빌었고, 불도를 닦으며 공덕을 쌓기에 몰두하였습니다. 전생과 이생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니 ‘절을 지어서 명복을 빌어드리는 것이 부모님의 은혜를 갚는 길이겠지.’ 라고 생각하여 이번 생의 부모님을 위해서는 불국사를, 지난 생의 부모님을 위해서는 석불사(석굴암)를 지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불교의 윤회사상과, 부모님의 은혜를 갚기 위한 깊은 불심에 바탕을 둔 불국사 창건 배경을 반영한다는 데 그 의의를 찾습니다. <지역N문화>
◆불국사에는 김대성의 효심 외에도 아사달과 아사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신라 재상 김대성은 백제 출신의 뛰어난 석공 아사달에게 불국사 석가탑 건축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혼인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아사달은 신라로 떠났고, 삼년을 쉬지않고 일하자 석탑은 거의 완성에 가까워왔습니다. 한편 남편을 너무 그리워하던 아사녀는 천 리 길을 걸어 불국사에 도착했지만, 탑이 완성되기 전에는 여자가 들어갈 수 없다는 금기 때문에 매일 절 앞을 서성이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 보다 못한 스님이 가까운 연못에 완성된 탑이 비칠 것이라 하여, 아사녀는 매일 연못으로 가 치성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탑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고 그리움에 지친 아사녀는 결국 연못에 몸을 던집니다. 드디어 탑을 완성한 아사달이 급하게 연못으로 달려왔지만 아사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앞산의 바윗돌에 아사녀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바윗돌의 모습은 아사녀의 웃는 모습 같아 보이기도 했고 인자한 부처님의 모습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사달은 즉시 바윗돌에 아사녀의 모습을 새겼고,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그리움 등의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새겨진 바윗돌은 점차 자비로운 부처님의 모습으로 변해 아사녀와 부처의 모습이 담긴 불상이 완성되었습니다. 이후 아사달도 결국 연못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으며, 훗날 사람들은 이 연못을 '영지'라 불렀고, 끝내 그림자를 비추지 않던 석탑을 '무영탑'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 설화는 불국사의 연못과 석가탑에 얽힌 전설로 전해지며, 불국사에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것은 “선과 악, 깨끗하고 더러운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 등의 구별이 없는 부처님의 세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역N문화>
◆주요 전각 및 불상◆
불이문 不二門 |
앞3칸 다포 맞배지붕; 不二란 ‘진리는 둘이 아니다’는 뜻으로, 이곳을 통과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갈 수 있음을 상징하며, 모든 분별을 떠나고 언어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절대의 경지를 상징으로 『유마경』에는 불이법문(不二法門)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불이(不二)의 뜻을 알게 되면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해서 해탈문이라고도 합니다. 불교의 세계관에 따르면 수미산 정상에 들어서는 문으로 이곳을 통과하면 바로 도리천입니다. 불국사에서는 자하문(紫霞門)이 불이문의 자리라고 보면 되며, 청운교와 백운교 계단은 모두 33개로 도리천의 33천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
극락전 極樂殿 |
앞3칸·옆3칸 다포계 팔작지붕;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인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으로, 아미타전·무량수전이라고도 하며,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극락전에서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세 줄로 된 16단의 계단이 있으며, 이 48개의 계단은 아미타부처님의 48대원(大願: 법장비구승이었을 때 세운 결심)을 표현합니다. ⑥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27호): 높이 177cm 통일신라 불상으로, 어깨 높이로 들어 약간 오므린 왼손은 손바닥을 보이고, 오른손은 무릎에 올려 놓고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약간 구부리고 있으며, 본래 광배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극락전 앞 석등: 통일신라 양식의 8각 석등으로, 단아하고 아름다우면서, 같은 형태인, 대웅전 앞 석등보다 날렵한 인상을 줍니다. |
안양문 安養門 |
앞3칸·옆2칸 겹처마 맞배지붕; 강릉 객사문과 도갑사 해탈문을 참고한, 고려시대 양식의 건축물; 안양(安養)은 극락을 뜻아는 것으로, 연화교, 칠보교를 거쳐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으로 이르는 중문입니다. |
나한전 羅漢殿 |
앞3칸·옆3칸 주심포 맞배지붕; 석가모니 삼존불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뛰어난 제자들인 16나한을 모신 전각으로, 16나한전 또는 16응진전이라고도 합니다. |
비로전 毘盧殿 |
앞4칸·옆3칸 주심포 팔작지붕; 조선 후기 양식의 건물로, 화엄세계의 본존불이며, 부처의 지혜가 태양과 같이 밝고 광대무변함을 상징하는 금동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대적광전·대적전·대광명전·대광전·화엄전 등으로도 불립니다. ⑤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26호): 높이 177cm 탁월한 주조기술을 보이는 통일신라 작품으로,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어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과는 반대로 표현되었으며, 본래 광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27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립니다. |
관음전 觀音殿 |
앞3칸·옆3칸; 조선 초기 건축양식으로,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모신 전각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이승에서 고난받는 중생의 소리를 눈으로 보고, 그 고난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이와 같은 관음보살의 신앙은 대표적인 민간신앙의 하나입니다. |
무설전 無說殿 |
앞8칸·옆4칸 주심포 맞배지붕; 개창(開創) 후 중국에서 돌아온 의상(義湘) 대사가 최초로 강론한 곳으로, 경론을 강술하는 곳 임에도 무설(無說)이라고 한 것은 진리의 본질과 불교의 깊은 뜻이 언어라고하는 수단으로써는 도달 할 수없는 언어도단 (言語道斷)의 경지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무설전(無說殿): 무설(無說)은 '설법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말씀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진리가 명확하다'는 의미로, 무설전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중생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곳. 반면 설법전은 스님들이 대중에게 설법을 하는 공간으로, 무설전과는 달리 언어적 설법이 이루어지는 곳임] |
범종각 梵鐘閣 |
앞3칸·옆3칸 다포계 팔작지붕; 천판(天板:가장 윗판)에는 한 마리의 용으로 뉴(紐: 종의 꼭지)를 두고 종의 내부까지 뚫려 있는 음통관을 두었으며, 종 중간에 비천인상 4개를 돋을 문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전체적인 형태는 국보 제29호로 지정된 771 년에 만든 "성덕대왕신종" 일명 '에밀레종'(높이 333.cm)을 모방해서 만든 근세의 작품입니다. [범종(梵鐘): 법구사물(法具四物) 중의 하나로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도구이며, 시간을 알리거나 공양과 예배를 알리는 기구. 범종의 소리를 종성이라 하며, 새벽 28번, 저녁 33번 타종합니다. 육계·색계·무색계 하늘나라의 총 3계 28천을 깨우치게 하기 위함이고, 저녁엔 제석천왕이 머무는 33개의 나라에 부처님의 음성, 즉 종성이 퍼지게 하기 위함] |
좌경루 左經樓 |
앞1칸·옆3칸 다포 팔작지붕; 경전을 수장하던 누각이었으나 지금은 목어와 운판을 모시고 있습니다. [목어(木魚): 고사(庫司)의 방 앞이나 식당에 걸어 놓고 행자(行者)를 부를 때 두들기던 명고(鳴鼓)로, 후에 경(經)을 독송할 때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수중의 중생에게 불법을 전하는 법구(法具).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수행자가 항상 깨어 있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있음] |
범영루 泛影樓 |
앞1칸·옆3칸 다포 팔작지붕; 법고를 봉안한 3층 누각으로, 원래는 수미범종각으로 불리던 범종을 안치하던 범종각이었으며, 이는 수미산(須彌山) 모양의 팔각(八角)정상에 108 명이 앉을 수 있도록 누를 짓고 아래는 오장간(五丈竿)을 세울 수 있도록 설계하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세계 중심에 있는 수미산의 정상은 욕계(欲界)33 천의 위이고, 108 이라는 숫자는 인간의 번뇌를 통틀어서 하는 말이므로 수미범종각이라는 이름은 소리가 33 천의 온 세상에 울려 퍼져 인간의 모든 번뇌를 씻어 없애주는 것을 뜻합니다 [범영(泛影): 범종의 소리를 그림자에 비유하여 범종의 소리가 온 누리에 번져서 넘치는 것을 형용한 말] |
⑧대웅전 大雄殿 |
앞5칸·옆5칸 다포계 팔작지붕; 보물 1744호; 기둥을 생략한 내부 공간 구성 및 살미첨차의 초화문양(草花文樣)과 봉황 머리 조각, 평방에서 돌출된 용머리 조각 등 내·외부를 매우 화려하게 장식한 우수한 불전으로 그 가치가 큰 조선후기 대표적 불전 건축물입니다. 불국사의 중심법당으로, 수미단에는 목조삼존불인 석가모니불과 좌우협시인 미륵보살·갈라보살이 있고, 그 좌우에 흙으로 빚은 두 제자인 가섭·아난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후불벽화로 영산회상도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⑪대웅전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보물1797호): 영산회상도는 1769년 화완옹주와 상궁 및 시녀들의 보체를 기원하며 제작한 후불벽화로, 화면에 여러 권속들이 석가모니를 둥글게 에워싸고 있는 구도이며, 사천왕 벽화는 향좌측에 광목천·증장천도, 향우측에 지국천·다문천도가 각각 배치되어 있습니다. 영산회상도에 의례적인 호법신들을 그리지 않고 좌우 벽에 따로 그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매우 독특하게 탱화와 벽화가 한 세트를 이루고 있습니다. [미륵보살(彌勒菩薩): 미래에 성불하여 미륵불(부처)로 출현해 세상을 구원할 거라는 수기(부처의 예언)를 받고 지금은 도솔천에 올라가 수행하고 있는 석가모니의 제자] [제화갈라보살(竭羅菩薩): 석가모니에게 성불할 거라 수기를 준 과거불인 연등불(燃燈佛:정광불)이 성불하기 전의 보살 때 이름] [가섭: 마하가섭(摩訶迦葉); 석가불의 십대제자 중 한명으로, 두타행(頭陀行:세속의 욕심을 버림)을 가장 잘 실천한 인물] [아난: 산스크리트어로 "기쁨/환희" 뜻으로, 석가불의 사촌 동생이자 십대 제자 중 한 명인 아난다(Ananda)의 다른 이름] |
자하문 紫霞門 |
앞3칸·옆2칸 다포 팔작지붕; 조선 후기 양식 건축물;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는 대웅전(大雄殿)으로 통하는 중문(中門)으로, 백운교과 청운교를 올라오면 이 문으로부터 부처의 세게로 들어가게 됩니다. [자하문(紫霞門): 부처님의 몸에서 비추는 자금광(紫金光)이 안개처럼 서린 문이라는 뜻] |
천왕문 天王門 |
앞3칸·옆2칸 다포계 맞배지붕; 사찰에 들어서며 만나는 두 번째 산문(山門)으로, 수미산 중턱, 천상계(天上界)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천왕천에 살면서 제석천왕의 지시에 따라 사천왕천의 동서남북을 관장하고 있는 사천왕인 동지국천왕(비파)·남증장천왕(칼)과 서광목천왕(용)·북다문천왕(탑)이 각각 양쪽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 사바 속세와 경계지간 가까운 곳에 위치해 천상의 수문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미산(須彌山):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는 산. 주위에 승신주·섬부주·우화주·구로주 4대 주가 동남서북에 있고, 그것을 둘러싼 구산(九山)과 팔해(八海)가 있으며, 이 수미산의 하계에는 지옥, 수미산의 가장 낮은 곳에는 인간계, 수미산 중턱의 사방에 동방지국천·남방증장천·서방광목천·북방다문천의 사왕천(四王天)이 있음] |
일주문 一柱門 |
사찰 입구에 들어서며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산문(山門)으로,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한 일주(一柱)라는 명칭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며, 사찰에 들어서기 전 세속의 번뇌를 씻고 진리의 세계를 향해 일심으로 들어오라는 의미입니다. |
①다보탑 多寶塔 |
국보 제20호; 높이 10.29m; 대웅전 앞 동쪽에 위치한 통일신라 석탑으로, 4각· 8각·원을 한 탑에 구성하고 각 부분의 길이·너비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모양이 훌륭한 작품입니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깔끔하게 표현한 뛰어남을 보이며, 일반탑과 다르게 층수가 불분명한 점, 십(十)자 모양 평면의 기단의 사방에 돌계단을 올린 점,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린 점등 한국의 일반 석탑과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렸으며,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4마리의 돌사자 중 3마리가 약탈되어,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으며, 현재 1마리의 돌사자가 남아있습니다. |
②석가탑 釋迦塔 |
국보 제21호; 높이 10.75m; 대웅전 앞 서쪽에서 동쪽의 다보탑을 마주보고 있는 일반형 삼층석탑으로, 두 탑은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상징합니다.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 이라고도 불리는 석가탑의 본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이며,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석탑으로,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112)과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38)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 작품이며,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었고,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1966년 도굴꾼에 의해 손상된 탑을 수리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126호)이 발견되었습니다. |
③연화·칠보교 蓮華·七寶橋 |
국보 22호; 극락전으로 향하는 돌계단으로, 위8단이 칠보교, 아래10단이 연화교입니다.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세속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이며, 비구니가 된 신라 헌강왕비도 이곳을 오가며 왕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웅전의 청운교 ·백운교보다 규모가 작을 뿐 구조나 구성형식 등이 매우 비슷하지만, 연화교의 층계마다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새겨놓은 점이 다릅니다. |
④청운·백운교 靑雲·白雲橋 |
국보 23호;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석조계단으로 구현된 상징적 다리로, 위16단이 청운교, 아래18단이 백운교인데, 청운교를 푸른 청년의 모습으로, 백운교를 흰머리 노인의 모습으로 보아 인생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통일신라 다리로는 유일한게 완전한 형태로 남은 귀중한 유물이며, 무지개모양으로 이루어진 다리 아래부분은 우리나라 석교나 성문에서 보여지는 반원아치모양의 홍예교의 시작점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
⑦사리탑 舍利塔 |
보물 61호; 불국사 강당 뒤쪽의 보호각에 보존되어 있는 겉모습이 석등과 비슷한 사리탑으로,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아래는 받침이 되는 기단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두었으며, 평면이 8각인 기본형에서 벗어난 형태를 보여줍니다. 1905년 일본인에 의해 동경의 우에노공원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1933년에 반환된 것으로, 일제시대 당시 모진 수난을 당한 우리 문화유산의 아픈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
⑨석조 石造 |
보물 1523호; 불국사 경내 청운교 백운교 옆,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 왼쪽에 위치함 통일신라 조형물로, 백제시대의 원형 석조와 달리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형상인 직사각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내·외면에 조각이 있는 점과 다른 직사각형의 석조와는 달리 모서리를 둥글게 한 것이 특이하며, 바닥면에 화려한 연화문 조각이 있습니다. (석조: 큰 돌을 파서 물을 부어 쓰는 석기로, 절에서 그릇을 닦는 용도로 쓰임) |
⑩가구식 석축 石築 |
보물 1745호; 통일신라의 돌벽으로, 안양문과 자하문의 남쪽과 좌우에 잘 남아있으며, 청운·백운교 및 연화·칠보교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안양문 앞의 석축은 밑에서부터 수직으로 상하 2단의 석주를 세우고 거기에 주두석· 동자주· 인방석 등으로 장방형에 가까운 격자형 틀을 형성하고 그 안에 자연석을 밀실하게 채워 넣은 형태이며, 자하문이나 범영루 앞의 석축은 백운교 계단 위에서 단을 달리하여 상단과 하단의 축석 방식에 변화를 준 방식입니다. |
⑫당간지주 幢竿支柱 |
유형문화재446호; 불국사 경내 입구 대석단 앞에 동서방향으로 2쌍이 나란히 서있는 통일신라 양식의 석조물로, 서편 당간지주는 좌우 기둥의 크기와 제작수법에 차이가 있어 각기 다른 부재를 후대에 조합한 것으로 추정되며, 동편 당간지주는 전반적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하나 양 기둥의 하부가 절단된 것을 1924년도에 시멘트로 접합하였고 풍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
불국선원 | 불국선원은 1974년 향곡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안거에 들면서 시작되었고, 현재의 선원 건물은 1976년 당시 불국사 주지였던 월산(月山)스님께서 만든 것으로, 큰방과 염화실· 객,실 지대방· 간병실· 다각실· 식당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불국선원은 짧은 역사에도 범룡스님·송담스님·일타스님·정일스님·혜정 스님 등 여러 명안종사가 거쳐 갔고, 경허·만공·보월·금오스님으로 이어지는 덕숭선맥을 이은 월산스님의 지도와 가르침 아래 하루 4번 참선하며 운동과 등산을 병행합니다.현재 불국사 주지이신 종우 스님께서 선원장으로 계십니다. |
불국사강원 | 승가대학; 정혜쌍수의 수행기치를 주창하신 성림당 월산 대종사께서 후학양성의 큰 원력을 세워 당시 대강백이신 범룡, 운기스님을 모시고 강의를 시작하여 현재 약 40년의 역사를 지닌 명문 강당입니다. 조선시대부터 약 300년간 한문원전 위주의 훈고학적 교육의 방법을 고수해 온 강원은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우선 교육원의 ‘승가대학 교과목개편안’을 수용하여 강의를 시작합니다. 현재 학장으로는 유ㆍ불ㆍ선에 정통하신 일해 덕민 스님이십니다. |
불국사박물관 | 천왕문 우측 언덕 3500평 부지에 세워진 지상1층·지하1층 규모로, 1996년 석가탑 수리과정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국보126호)와 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의 기와류·공예품 등은 불국사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며, 독립운동가 후손인 학산 남석환 선생님이 기증하신 유물 200여 점 중 동방의 불교와 서방의 고전 미술이 결합된 간다라 불상관은 실크로드의 자취를 엿볼 수 있으며, 특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다시 불국사로 돌아와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
부속암자 | 석굴암(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인공 석굴로, 내부에는 본존불인 석가불상을 중심으로 다양한 불상들이 배치되어 있는 불국사의 말사)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 전화번호: 054-746-9913
♣이상으로 경상북도에서 꼭 가봐야 할 사찰 6곳 중 경주 토함산 불국사에 대한 정보를 안내해 드렸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한국불교문화포털, 국가유산포털,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역사문화유산, 지역N문화, 불교신문, 법보신문, 현대불교, 네이버지식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불국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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