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사찰 탐방: 영주 봉황산 부석사의 건축미와 역사, 그리고 전해 내려오는 흥미진진한 설화를 한눈에 만나보세요.
2. 부석사(寺)
백두대간 선달산에서 뻗어내린 봉황산 자락 해발 700m 부석리 산등성이에 자리한 부석사(浮石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은사의 소속 사찰로, 화엄종의 개조이자 화엄십찰의 건립자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종의 근본도량입니다. 공민왕7년(1358년)에 왜적의 침탈로 가람의 일부가 소실되었고, 우왕2년(1376년)에는 원응국사(圓應國師) 천희(千熙)가 무량수전과 조사당을 중수하였으며, 대대적 중창으로는 1580년에 사명대사의 중건과 1746년에 화재로 소실된 전각 등을 1748년에 복원한 일을 들 수 있습니다.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수도처로 유명한 취현암은 최근까지도 선원으로 쓰이다가 현재는 산내암자로 속해있습니다. 부석사는 신라 의상대사(義湘大師)가 676년 중국 당나라 유학 후 돌아와 처음으로 지은 절이며, 입적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그의 법을 이은 법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이름을 ‘부석사’라 한 것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부석(浮石: 뜬돌)’’이라 부른 데서 비롯합니다. 부석사는 한국 전통건축의 모범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전각이 다 잘 갖추어져 있는데, 가파른 산의 지형을 깎지 않고 석축을 쌓아 건물을 지어, 각종 전각과 석탑, 석등이 높이를 달리하여 굳건히 살아있고, 이를 한층 더 이용해 중심법당을 최고 위치에 모셔 신앙과 수행의 도량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공간 배치를 이루고 있습다. 부석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조사당· 소조여래좌상 등, 팔공산 불교문화권을 대표하는 성지로서 국내외 불자 및 문화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부석사 석축: 절 입구부터 무량수전까지 이어지는 단을 이루는 축대로, 108계단으로 구성된 총 9개의 석축 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화엄종 구품정토(九品淨土)의 9품 만다라(본질이 여럿으로 변한다는 의미)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구품정토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선행·염불의 정도에 따라 9단계로 나뉘는데, 상품(上品)·중품(中品)·하품(下品)에 각각 상생(上生)· 중생(中生)· 하생(下生) 3단씩 있어, 상품상생에서 하품하생까지 모두 9품이 됩니다. 부석사 천왕문부터 종무소까지가 하품, 종무소에서 종루까지가 중품, 범종루부터 안양루까지가 상품이며 각 단계마다 3단의 석축을 지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석축단 안양루를 지나며 곧 부처님의 세계인 무량수전 앞마당이 나옵니다. 석축의 계단들을 오르는 것은 극락으로 가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며, 불교의 수행 과정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부석사의 석축들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산 중턱의 비탈을 편평하게 고르면서 쌓여졌는데, 석축의 재료가 된 돌들은 원래의 모양을 간직한 채 앞면은 편평하게 다듬고 다른 돌들과 맞닿는 양면은 돌의 모양에 맞춰 다듬어 자연스러운 미감을 더하며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역할을 합니다.
◆중국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전하고 있는 의상대사와 선묘(善妙) 낭자의 인연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문무왕1년(661) 당시 중국에서 한창 성행하던 화엄교학을 연구하기 위해 황해를 건너 산둥반도 등주(登州)에 도착한 의상이 몸이 불편하여 어느 불교 신도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그 주인집 딸이 선묘였는데, 의상의 높은 덕과 맑고 기품 있는 용모에 연민의 정을 품게 되었고, 의상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불법과 스님 앞에 귀의할 것을 맹세하며 자신을 거두어 주길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상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종남산(終南山)으로 떠나 지상사 지엄대사의 문하에서 10년 동안 화엄학을 닦아 스승의 가르침보다 훨씬 깊은 경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당나라의 신라 침공 계획을 미리 알게 된 의상은, 이를 신라에 알리기로 결심하고, 귀국 길에 10년 전 고마운 인연인 선묘의 집을 찾습니다. 그러나 불단 앞에서 합장하고 염불 삼매에 잠긴 선묘의 뒷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힐까 두려워 발길을 돌렸습니다. 다음날 이를 알아챈 선묘가 서둘러 선창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의상이 탄 배는 수평선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선묘는 10년 동안 의상을 위해 지은 가사와 장삼이 담긴 옷상자를 힘껏 바다 위에 던지면서 “불보살님이시여, 불법의 뜻이면 이 옷상자가 배에 오르게 하소서.”라고 빌자 옷상자는 바람을 타고 바다 위를 달려 뱃전에 올랐습니다. 이어 선묘는 “용이 되어 스님이 탄 배를 호위하리라.”라고 맹세하고 바다로 몸을 날렸고, 용이 된 선묘는 배가 험난한 바닷길을 무사히 건너게 했습니다. 귀국 직후 의상은 문무왕에게 당의 침공 계획을 알리고, 5년간 전국을 돌아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명당 절터에 이르렀지만 이교도의 무리들이 터를 차지하여 비우지 않았습니다. 이에 용이 된 선묘는 반석을 공중에 띄워 놀라운 괴력을 보임으로써 방해하는 이교도들을 물리치고 절이 완성되도록 도와주었고, 그 후 선묘룡(善妙龍)은 오래도록 의상의 법을 받들고 도량을 지키기 위해, 그 넋이 석룡이 되기를 발원해 법당 아래 묻혔다고 합니다. 현재 부석사에는 선묘와 관련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선묘룡은 무량수전 본존의 대좌 밑에 머리를 두고, 굽이를 틀어 그 꼬리 끝이 뜰 앞 석등 아래쯤에 묻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석룡의 허리를 잘랐다는 전설처럼 실제로 허리 부분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또 무량수전 서쪽에 있는 부석은 선묘룡이 이교도를 물리친 반석이며, 이러한 선묘의 화상을 안치한 선묘각이 무량수전 뒤쪽에 있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주요 전각과 불상◆
자인당 慈忍堂 |
앞3칸·옆2칸 주심포 맞배지붕; 응진전 서쪽 옆; 선방으로 사용되던 건물로, 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동방사지(東方寺址)에서 옮겨 온, 석조 삼존상인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1636호)을 봉안하고 있는데, 같은 규모의 삼존상이며, 2구는 지권인의 비로자나불상, 1구는 항마촉지인의 석가모니불상입니다. 이 중 비로자나불 2구는 영주북지리석조여래좌상(보물220호)로 지정되었는데, 동쪽의 여래상은 미소를 머금은 타원형 얼굴에 두 손은 없어졌으나 두 팔이 가슴쪽으로 올라가 있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손모양을 취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권인(智拳印): 양손을 가슴 앞에 올리고, 곧바로 세운 왼손의 검지를 감싼 오른손의 엄지 손가락 끝을 왼손 검지 끝에 맞댄 다음 나머지 손가락을 말아쥔 형태로, 비로자나불 특유의 수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악마를 물리치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킨다는 뜻으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순간에 악마를 물리치고 땽의 신에게 증거를 청하는 모습을 표현한 수인. 무릎 위 왼손의 손바닥은 위로 향하며, 오른손의 손가락은 땅을 가리킴] |
응진전 應眞殿 |
앞3칸·옆2칸 익공계 맞배지붕; 무량수전 영역의 북쪽 위편에 위치한 전각으로, 나한전이라고도 하며, 내부에 석고로 만든 석가삼존불과 석가모니의 뛰어난 제자인 십육나한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
단하각 丹霞閣 |
사방1칸 맞배지붕; 응진전 뒤쪽 위치한 전각으로, 손에 쥐를 든 작은 나한상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
취현암 醉玄庵 |
앞3칸·옆2칸 맞배지붕; 조사당 동쪽 옆에 위치한 산내암자로, 2002년까지 선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며, 조선시대 사명대사의 수도처로 유명하고 부석사 경내에서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조사당 祖師堂 |
앞3칸·옆1칸 초익공계 겹처마(앞면) 맞배지붕; 국보19호; 불교 고승의 사리를 기리는 사당 중 가장 오래된 예이며, 절의 창건주인 의상대사를 모신 건물로, 내부에는 의상대사상과 의상대사의 일대기를 봉안하고 있으며, 내부의 입구 좌우벽에는 보살상·사천왕상 등 고려 말 벽화(국보46호)의 모사도가 있고, 진짜 벽화는 벽면 전체를 떼어 유물전시각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조사당의 처마 아래 큰 철창 안에 선비화(골담초)라는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의상 대사가 평소 지니고 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지금까지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택리지(擇里志)』에 의상이 죽을 때 “내가 여기를 떠난 뒤 이 지팡이에서 반드시 가지와 잎이 날 것이다. 이 나무가 말라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으리라.” 하였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
삼보실 三寶室 |
불교의 핵심인 삼보(三寶)를 기리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삼보(三寶)는 불(佛), 법(法), 승(僧)을 의미하며, 불교 신자들이 귀의하는 세 가지 근본 대상입니다. 불(佛)은 부처님, 법(法)은 부처님의 가르침, 승(僧)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승려들을 의미합니다. |
삼성각 三聖閣 |
앞3칸·옆2칸 다포형 익공계 팔작지붕; 장대석으로 4단 쌓은 기단 위에 원형 초석 위에 세운 건물로, 원래 축화전(祝花殿)이라 불렀는데 영조 때 대비의 원당으로 지은 건물이었으며, 1979년의 보수 때까지는 원각전(圓角殿)이라 하였고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모셨다고 합니다. 현재는 내부 중앙에 미륵반가사유상과 칠성도를 봉안하고 있으며, 칠성도 좌측에는 산신도를, 우측에는 독성과 독성도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
부석 浮石 |
무량수전 앞에 위치한 전설의 바위로, 지면과 접하지 않고 떠 있는 듯한 형태로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
선묘각 善妙閣 |
사방1칸 맞배지붕; 무량수전 북서쪽 위치한, 의상대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된 인물인 선묘를 모신 건물로, 내부에는 1975년에 그린 선묘도가 걸려있습니다. |
무량수전 無量壽殿 |
앞5칸·옆3칸 주심포 팔작지붕; 국보18호; 기둥 사이가 길고 높이도 높아 안정감 있어보이는 고려중기 건물로, 착시에 의한 건물의 왜곡현상을 막는 수법인 평면의 안허리곡, 기둥의 안쏠림과 귀솟음, 배흘림기둥, 항아리형 보 등을 보여주며, 내부는 서쪽에 불단과 화려한 닫집을 만들어 고려 소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45호)를 모시고 있습니다. 한국 2번째로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며,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15호),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49호)과 더불어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3대 목조 건축물입니다. 무량수전은 남향을 하고 있지만 아미타불을 서쪽에 배치했는데, 이는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인 아미타불이 서쪽에 계시므로 서쪽에 절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무량수전無量壽殿): 무량수는 '한량없는 생명'이라는 뜻으로,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광명을 상징하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 다른 이름 극락전·미타전·무량수전·무량광전] |
무량수전동쪽삼층석탑 | 보물249호: 높이 526cm ; 무량수전 위편 동쪽 언덕에 세워진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으로, 2단의 기단 위레 3층 탑신을 세웠고, 기단 각 면에 모서리와 가운데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고,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있는데,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으며,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5단으로 통일신라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
무량수전앞석등 | 국보17호; 높이2.97m 화강암으로 만든 8각의 통일신라 최고의 석등으로, 광명등이라고도 하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의 아래 8각으로 된 기둥은 윗받침과 아래받침돌 모두 연꽃문양을 넣었으며, 4개의 창을 둔 8각 화사석은 나머지 4면에 보살이 새겨져있고, 8각의 지붕돌은 경쾌하게 모서리가 살짝 들려있습니다. |
안양루 安養樓 |
앞3칸·옆2칸 다포식 팔작지붕; 보물; 2단으로 쌓은 높은 석축 위에 세워진, 무량수전 맞은편에 있는 누각으로, 누 밑을 통과하여(누하진입) 무량수전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어 해탈문 역할을 합니다. 전면에서 보면 2층, 무량수전 쪽에서 보면 단층으로 보이는데, 전면에 걸린 현판의 ‘안양(安養)’은 극락을 뜻하고, 뒷면의 현판 '안양문'은 극락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하여 안양문을 지나면 나오는 무량수전은 극락을 상징합니다. 2층 누각에 올라 내려다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가람과 멀리 펼쳐진 소백산맥의 봉우리들 경관이 뛰어나 예로부터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인 김삿갓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경치를 노래하며 남긴 시문(詩文) 현판들이 누각 내부에 걸려 있습니다. |
범종루 梵鐘樓 |
앞3칸·옆4칸 팔작/맞배지붕; 보물; 대석축단과 안양루 석축으로 구분되는 공간의 중심에 위치하는 누각으로, 사찰의 중문에 해당하며, 특이하게 측면으로 앉아있어 앞면은 팔작지붕이고 무량수전을 향한 뒤편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부석사의 소백산맥을 향해 날아갈 듯 앉아있는 방향을 따라 범종각을 옆으로 배치하고 뒤쪽지붕을 맞배로 처리하여 건물도 전반적으로 비상하는 느낌을 주게 했습니다. 법고·목어·운판이 모셔져 있습니다. |
삼층석탑 | 경남유형문화재130호; 360cm(동탑)·377cm(서탑);경남유형문화재; 통일신라 양식의 단아한 2기의 석탑으로, 쌍탑(雙塔)으로 조성한 듯 두 탑의 크기나 양식이 서로 비슷하며, 절의 가장 아래쪽인 종루 앞 대석단 위에 세워져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원래는 절 동쪽 200m 약사골에 있던 것을 1966년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
선열당 禪悅堂 |
앞3칸·옆2칸; 범종각과 안양루 사이에 위치한 전각으로, 스님들이 생활하시는 요사로 쓰입니다. |
종각 鐘閣 |
앞3칸·옆2칸 익공 맞배지붕; 범종을 봉안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
원주실 | 앞3칸·옆2칸; 요사로 사용되는 공간입니다. |
종무소 宗務所 |
앞5칸·옆2칸 팔작지붕; 사찰의 법회에서 신도관리까지 사찰에서 모든 행정 및 운영업무를 맡아보는 공간입니다. |
지장전 地藏殿 |
앞3칸·옆2칸 주심포 맞배지붕; 명부전이라고도 하며, 지장삼존상과 지장후불탱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
장경각 藏經閣 |
앞5칸·옆1칸 주심포 맞배지붕; 응향각 북쪽에 있는 전각으로, 고려시대 화엄경판 643판(보물735호)을 보관합니다. |
응향각 凝香閣 |
앞5칸·옆1칸 익공계 맞배지붕; '향기가 모이는 전각' 이란 뜻이며, 본래 취현암 앞에 위치한 강원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계단 오른쪽에 위치했었는데, 통로와 너무 인접하여 1980년 철거하고 뒤로 물려서 신축했습니다. 향로전·일로향각 등으로도 불립니다. |
벽화보존각 | 부석사에 있는 조사당 벽화를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으로, 원래는 무량수전 뒷면에 있던 벽화를 떼어내어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현재는 성보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습니다. |
보장각 寶藏閣 |
앞3칸·옆2칸 맞배지붕; 부석사의 유물전시관으로, 고려각판(보물735호)과 조사당에서 떼어낸 조사당 벽화(국보46호)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
회전문 廻轉門 |
앞3칸·옆3칸 맞배지붕; 거대한 석축 위에 지어진 문으로, 윤회전생(輪廻轉生)을 일깨우기 위한 의미로 근래에 세워진 건축물입니다. |
천왕문 天王門 |
앞3칸·옆2칸 다포 맞배지붕; 가람과 불법을 수호하는 동서남북의 사천왕인 지국천왕 ·광목천왕 ·증장천왕·다문천왕이 모셔져 있습니다. 천왕문을 지나며 석축의 시작점이 나오고 무량수전까지 9개의 석축과108개의 계단이 이어집니다. [동방지국천왕(持國天王): 국토를 지키는, 청색 얼굴에 비파를 들고 봄을 관장, 인간을 보살피고 착한이에게 상을 주는 신] [서방광목천왕(廣目天王): 눈이 넓은, 백색 얼굴에 용과 여의주를 들고 가을을 관장, 악한이에게 고통을 주어 불법을 찾게 하는 신] [남방증장천왕(增長天王): (덕)이 늘어나는, 붉은 얼굴에 검을 들고 여름을 관장, 자신의 위덕으로 만물을 소생시키는 신] [북방다문천왕(多聞天王): 많은 것을 듣는, 검은색 얼굴에 보탑과 삼지창을 들고 겨울을 관장, 어둠 속을 헤매는 중생을 구제하는 신] |
당간지주 幢竿支柱 |
보물255호; 높이428cm 통일신라 당간지주; 마주보는 안쪽 옆면과 바깥면에는 장식이 없고, 양 모서리는 둥글며, 기둥머리는 깃대를 고정시키기 위한 4각형의 홈이 파여 있습니다. 기둥 사이에는 정사각형 받침 위에 원형을 돌출시켜 깃대를 세우기 위한 자리가 있습니다. [당간지주(幢竿支柱): 사찰에서 행사나 의식 때 사용되는 깃발인 당(幢)을 달기 위한 장대인 당간(幢竿)을 지탱하는 돌기둥] |
일주문 一柱門 |
앞1칸 다포계 맞배지붕; 사찰에 들어서는 첫 번째 산문으로, 2개의 기둥을 나란히 세운 형태를 하고 있으며, 세속의 번뇌를 씻고 불심으로 나아가는 공간의 시작을 알립니다. 일주문은 천왕문·범종루·안양루를 차례로 거처 부처님의 셰계인 중심법당 무량수전으로 이르는 경로의 첫 번째 관문입니다. 앞에는 태백산부석사(太白山浮石寺), 뒤에는 해동화엄종찰(海東華嚴宗刹)라고 쓴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
부속암자 | 취현암 |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48번지), 전화번호: 054-633-3464
♣이상으로 경상북도에서 꼭 가봐야 할 사찰 6곳 중 영주 봉황산 부석사에 대한 정보를 안내해 드렸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한국불교문화포털, 국가유산포털,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디지털영주문화대전, 역사문화유산, 지역N문화, 불교신문, 법보신문, 현대불교, 제주불교신문, 네이버지식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산사한국의산지승원, 부석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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