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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365/한국사찰 탐방

충청남도에서 꼭 가봐야 할 사찰 6곳: 1. 수덕사

by 지오1 2025.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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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대표 사찰 예산 덕숭산 수덕사의 건축미와 입지, 창건 배경, 주요 전각·불상, 그리고 숨겨진 설화와 역사적 에피소드를 한눈에 담은 불교 여행 가이드입니다.

 

 

1. 수덕사 (修德寺)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는 덕숭산 남쪽 중턱에 자리잡은 천년 고찰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한국의 유일한 백제 사찰이며, 덕숭산의 정기를 이은 덕숭총림의 중심 도량입니다.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나, 백제 위덕왕(威德王,554~597) 재위시에 지명법사(智明法師)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사기(寺記)에는 백제 말에 숭제법사(崇濟法師)가 창건했다고도 합니다.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한 것으로 전하며, 조선 고종2년에 독립운동가 만공 스님이 중창한 이후 선종 유일의 근본도량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충남 일대에 약 66개의 말사를 관장하고 있는 수덕사는 일제 강점기에는 마곡사의 말사로 들어갔었지만 광복 후 제7교구 본사로 승격하고 총림으로 승격하여 1984년 당시 한국 4대 총림에 들게 되었습니다. 현재 수덕사는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동화사· 범어사와 더불어 대한불교조계종의 6대 총림 중 하나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33관음성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수덕(修德)은 '덕을 닦는다'는 의미로, 수덕사라는 이름은 산 이름인 덕숭산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수덕사의 가람 배치는 완만한 산등성이를 따라 삼단으로 구획하고, 가장 위쪽에 대웅전을 배치한 전형적인 산지형 가람 배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특히 석축을 쌓아 단을 구분하고, 각 단마다 건물들을 배치하여 자연 지형을 활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중요 문화재로는 기록상 한국 최고(最古)의 건축물인 대웅전을 비롯해서, 보물 제1263호 수덕사 노사나불 괘불탱, 보물 제1381호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등이 있습니다. 국보 제49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팔작지붕 목조건축의 우아한 비례미를 지니며, 사천왕문·해탈문·용화전·심검당 등 각 시대의 건축양식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가야산과 내포평야를 조망하는 경치는 신심을 고취시키며, 수덕사는 수행 전통과 불교 교육을 실천해 온 역사적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림'은 선원, 강원, 율원 등 수행기관을 모두 갖춘 종합수도장으로, 한국불교의 전통적인 수행문화를 보여주는 핵심 공간입니다. 총림의 역사는 1960년대 해인사를 시작으로 하여, 1967년 가야총림(해인사), 1970년 영축총림(통도사), 1971년 조계총림(송광사), 1978년 덕숭총림(수덕사), 1981년 고불총림(백양사)이 오대총림으로 지정되었고, 2012년 팔공총림(동화사), 쌍계총림(쌍계사), 금정총림(범어사)이 추가되어 8개의 총림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2019년에 교육기관 마비 등을 이유로 백양사를, 2023년에는 방장 부재를 이유로 쌍계사를 총림에서 해제시켜 현재 6대총림이 있습니다.

 

◆한국 33관음성지: 고운사· 구룡사· 금산사· 기림사· 낙산사· 내소사· 대흥사· 도선사· 동화사· 마곡사· 백양사· 범어사· 법주사· 법흥사· 보리암· 보문사· 봉은사· 불국사· 선운사· 송광사· 수덕사· 신륵사· 신흥사· 쌍계사· 용주사· 월정사· 은해사· 조계사· 직지사· 통도사· 해인사· 향일암· 화엄사

 

◆‘공민왕금(恭愍王琴)’이라 불리는 거문고는 고종의 둘째 아들 의친왕 이강이 바친 악기로, 이후 만공스님이 이를 전수받아 사용했습니다. 거문고 머리 부분에는 ‘공민왕금’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 만공스님의 친필 시문이 함께 각인되어 조선 후기 왕실과 승려의 인연을 상징합니다. 이 유물은 수덕사의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방문객들이 직접 시문과 음률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물로 남아 있으며, 왕실문화와 불교 수행의 접점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덕산향토지(德山鄕土誌)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수덕사의 첫번째 창건설화입니다.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 있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 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집에 돌이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낭자가 건너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합니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고,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타버렸고,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또다시 불타버려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으며,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도 대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났는데,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합니다. 낭자는 바로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덕숭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 수덕사라 불렀다고 합니다. <덕숭산수덕사홈페이지>

 

◆대웅전 서쪽 백련당 뒤편에 있는 바위에 얽힌 전설로, 수덕사의 두 번째 창건설화입니다. 백제시대에 창건된 수덕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람은 극히 퇴락이 심해 대중창불사를 하여야 했으나 당시의 스님들은 불사금을 조달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서 불사를 돕기 위해 공양주를 하겠다고 자청하였는데, 이 여인의 미모가 빼어난 지라 수덕각시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원근에 퍼지게 되니, 심상궁곡인 수덕사에 이 여인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중 신라의 대부호요 재상의 아들인 '정혜(定慧)'라는 사람이 청혼을 하기까지에 이르렀으며, 이 불사가 원만성취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여인의 말을 듣고 이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10년 걸릴 불사를 3년만에 원만히 끝내고 낙성식을 보게 됩니다. 낙성식에 대공덕주로서 참석한 이 청년이 수덕각시에게 같이 떠날 것을 독촉하자 '구정물 묻은 옷을 갈아 입을 말미를 주소서'하고 옆방으로 들어간 뒤 기척이 없었습니다. 이에 청년이 방문을 열고들어가려하자 여인은 급히 다른 방으로 사라지려 하였습니다. 그 모습에 당황한 청년이 여인을 잡으려 하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짝만 남기고 사라지니, 갑자기 사람도 방문도 없어지고 크게 틈이 벌어진 바위 하나만 나타나 있었습니다. 이후 그 바위가 갈라진 사이에서는 봄이면 기이하게 버선모양의 버선꽃이 지금까지 피고 있으며, 그로부터 관음보살의 현신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이 수덕이었으므로 절 이름을 수덕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광경을 본 정혜라는 청년은 무상함을 느끼고 산마루에 올라가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정혜사라 하였으며, 또한 이때부터 관세음보살이 현신하여 절을 크게 중창하고 바위속으로 사라진 이 곳에서 기도를 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는 소문이 경향각지에 퍼지자 소원을 비는 인적이 끊이지 않았으나, 수덕사는 근대한국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만공스님의 가풍을 간직한 선찰로서 자칫 기복에 치우칠 우려가 있어 이를 더이상 구전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많은 불자들의 심원(心願)에 따라 수덕사에서는 이 성역에 참배 기도하는 이에게 관음의 신통묘용(神通妙用)한 가피(加被)가 얻어지기를 기원하며 근래에 관음상을 봉조하게 되었습니다. <덕숭산수덕사 홈페이지>

 

<예산 덕숭산 수덕사 경내지도>

 

 

◆주요 전각 및 불상◆

대웅전 앞3칸·옆4칸 주심포 맞배지붕; 국보49호; 넓은 기둥 간격, 배흘림 기둥의 특징을 지닌 안정감 있고 단정하게 보이는 건축물로, 국내에 현존하는 목조건물 가운데 건축 시기가 명확한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입니다. 1937년에 해체 수리를 할 때 중수년대가 적힌 붓글씨가 발견되어 이 건물이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지어졌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웅전은 석가삼불좌상을 모신 수덕사의 중심법당으로, 고려시대 벽화가 있으며,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 보살과 양끝에 일월광불 등 5 부처를 그린 조선시대 벽화인 오불도가 있습니다.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보물1381호: 석가여래와 좌우 아미타불·약사불 삼세불좌상과 그 속에 있던 복장유물· 연화대좌· 수미단 등을 포함하는 일괄 유물로, 목조 삼세불 좌상은 만공이 전북 남원시에 있는 만행산 귀정사(歸淨寺)로부터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고려시대 벽화: 소불(小佛)·주악비천(奏樂飛天)·공양화(供養花)·나한(羅漢)·극락조(極樂鳥) 등이 묘사된 고려시대 소형 벽화 40점이 있는데, 6·25동란으로 파괴되고 현재는 당시 임천(林泉)이 그린 모사도(模寫圖)의 일부만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유이하게 고려시대 사원 벽화의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삼층석탑
三層石塔
충남유형문화재103호; 여래탑; 대웅전 앞; 높이 4m, 2층 기단과 3층 탑신부로 이루어진 고려시대 삼층석탑으로, 전체적으로 균형미를 갖춘 탑입니다. 상층 기단의 각 면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가 표현되어 있으며, 탑신부에서 옥개석(지붕돌)과 탑신이 각각 1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층 옥개석과 노반은 1석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 보륜(寶輪)과 보개(寶蓋)가 남아 있습니다. 
명부전
冥府殿
앞3·옆1칸 주심보 맞배지붕: 수미단에는 왼손에 보주를 든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으며, 후벽에는 오른손에 보주를 왼손에 육환장을 들고 있는 지장보살과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더불어 시왕들 권속이 둘러쌓고 있는 지장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명부전: 저승세계를 상징하며, 죽은 이의 영혼 심판과 구제를 담당하는 지장보살과 명부시왕을 봉안한 전각. 저승 세계인 명부(冥府)를 사찰 안으로 옮겨온 곳으로, 망자를 위한 천도(薦度)의 근본 도량이자, 지장보살의 구원 의지를 기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하고, 그 외 판관, 녹사, 29개의 존상이 봉안되는 '시왕전(十王殿)'의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염화실
拈花室
요사채로 사용되는 건물로, 수덕사 조실과 초대 방장을 지내신 혜암 현문(惠菴玄門) 스님이 101세, 법랍 89세로 입적하신 곳입니다. 현문스님은 조선 말기 대선지식(大善知識)인 경허(鏡虛惺牛)·만공(滿空月面) 두 선사의 가르침과 법통을 계승한 스님이십니다. 
[염화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연꽃을 들자 가섭존자만이 그 뜻을 알아 미소지었다는 '염화미소(拈花微笑)'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는 말없이 마음으로 진리를 전하는 선불교의 오묘한 가르침을 상징합니다. 주로 사찰의 최고 어른(조실스님이나 방장스님)이 거처하는 방이나 법을 전수하는 상징적인 공간을 뜻합니다.]
관음전
觀音殿
앞3·옆2칸 주심포 겹처마 맞배지붕(풍판): 내부 중앙에 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후면에는 관음보살 좌우로 용왕과 선재동자가 그려진 후불탱이 모셔져 있습니다. 
[관음전: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전각. '관음(觀音)'은 '세간(世間)의 소리(音)를 본다(觀)'는 뜻으로, 중생이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여 고통에서 구제해 주는 보살을 의미하며, 관음전은 원통전(圓通殿)· 보타전(菩陀殿)· 대비전(大悲殿) 등으로도 불립니다.]
백련당
白蓮堂
앞6칸·옆7칸 팔작지붕 ㄷ자형 건물; 대웅전 앞 서쪽; 선방으로 사용되는 요사로, 청련당과 마주보고 있으며, 백련당이라고 쓴 만공스님의 친필이 담긴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청련당
靑蓮堂
앞7칸·옆11칸 팔작지붕 ㄷ자 건물; 대웅전 앞 동쪽; 선방으로 사용되는 요사로,  백련당과 마주보고 있으며, 세계일화(世界一花)라고 쓴 만공 스님의 친필이 담긴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는 만공스님의 사상으로, 모든 생명이 차별 없이 하나로 피어나라는 간절한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공양실
供養室
대웅전 우측에 위치한 건물으로,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식사를 하는 장소입니다. 
[공양(供養):불법승 삼보(三寶)에 공물을 바치거나, 불사(佛事)를 돕는 이에게 음식이나 옷 등을 제공하는 행위를 뜻하며, 사찰의 부엌이나 식당 등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종무소
宗務所
1916년 만공 스님이 지으신 건물로, 부처님의 혜맥(慧脈)을 잇고 판단하는 곳이라는 뜻을 담아 조인정사(祖印精舍)라 이름지으셨다고 하며, 현재는 사찰의 모든 사무 및 신도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곳인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법고각
法鼓脚
앞3·옆2칸 다포계 팔작지붕; 수덕사 경내 석축을 올라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에 우측에 위치한 건물로, 건물의 단청이 화려하고, 법고를 받치는 받침대도 미술품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법고(북), 목어, 운판 등 세 가지 불교 의식용 타악기가 걸려 있으며, 법고는 짐승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목어와 운판은 예불 및 식사 시간을 알리는 데 사용됩니다.
범종각
梵鐘閣
앞3·옆2칸 다포계 팔작지붕; 높이 4.5m ,둘레 2.7m, 6500근 무게의 범종이 걸려 있는 종각으로, 성덕대왕 신종, 에밀레종 소리를 본뜨기 위해 전통 범종 주조기법을 사용해 만들었다고 하며, 범종각(梵鐘閣)이라고 쓴 원담 스님의 친필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금강보탑
金剛寶塔
높이 9.5m 화강암으로 세워진 탑으로, 황하정루을 오르면 바로 앞에 서 있으며, 대웅전, 삼층석탑과 일직선 상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2000년 수덕사 중창불사 도중 발견된 전탑(벽돌탑) 대좌 위에 세워진 탑으로, 1988년 스리랑카로부터 모셔온 부처님 진산사리를 봉안하고 있으며,연꽃좌대에 사자상, 보살상, 금강역사상 등이 조각된 것이 특징입니다. 금강보탑'이라는 명칭은 부처님의 지혜와 민족 화합을 상징하며, 봉안된 사리함 내부에는 한, 스리랑카 간의 우의를 상징하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백운당
白雲堂
앞9칸·옆3칸 익공 겹처마 맞배지붕; 황하정루 뒤편 서쪽에 위치한 건물로, 대웅전의 좌청룡(左靑龍)을 상징하는 청련당과 대칭되는 자리에 위치하며, 템플스테이 운영을 위한 사무실과 숙소가 있는 건물입니다. 백운당 편액은 19대 주지를 지내신 법정(法定) 스님의 친필 편액입니다. 
청운당
靑雲堂
앞9칸·옆3칸 초익공 맞배지붕; 황하정루 뒤편 동쪽에 위치한 1930년 비구니 선방으로 건립된 건물로, 현재 율학승가대학원(律學僧伽大學院: 율원)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하며, 청운당이라고 쓴 법정(法定) 스님의 친필이 담긴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황하정루
黃河精樓
앞7칸·옆3칸 주심포 이익공 겹처마 맞배지붕 중층건물; 근역성보박물관 구관; 강당 형식의 누각으로, 누각 밑을 지나 대웅전을 향한 계단을 오르는 해탈문 역할을 하며, 황하정루(黃河精樓)는 수덕사 방장이신 설정 송원 대종사께서 쓰신 편액입니다. 
[해탈문(解脫門): 건축적으로는 사찰의 세 번째 문인 불이문을 가리키며, 불이(不二, 둘이 아님)의 진리에 도달하여 모든 번뇌를 벗어나는 문, 즉 번뇌와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인 열반에 이르는 길 또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칠층석탑
七層石塔
충남유형문화재181호; 황하정루 앞;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석탑은 기단부 없이 바로 탑신과 옥개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층의 면석과 지붕돌은 별개의 돌로 이루어졌고, 면석마다 우주와 창방이 표현되어 있으며 지붕돌(옥개석)은 2단의 받침이 있는데 반전이 매우 심합니다. 간결하며 세련된 느낌을 주는 이 칠층석탑은 원래 수덕사 대웅전 앞에 있었으나 1990년대 후반 황하정루 옆으로 옮겨졌습니다.
염불원
念佛院
염불(念佛)이란은 부처님을 생각하고 염원하는 불교 수행법으로, '염불원'은 이러한 수행을 위한 장소입니다.
만공기념관
滿空記念館
앞5칸·옆3칸 팔작지붕; 만공(滿空)은 만공 월면 스님의 법명을 나타내며, 이 기념관은 만공 스님의 선 사상과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율학승가대학원(율원)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연당
心淵堂
'마음(心)이 깊은(淵) 집(堂)'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건물로, 주로 템플스테이나 법회, 어린이청소년 법회 등 종교 행사와 관련된 공간으로 사용됩니다.
완월당
完月堂
'완월(完月)'은 '가득 찬 달'을 뜻하며, 주로 스님들의 수도하는 승방으로 사용되는 공간입니다. 
감로당
甘露堂
'감로(甘露)'는 '달콤한 이슬', '감로수'를 의미하며, 2012년 건립된 요사(寮舍)채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건물 중 하나입니다.
사천왕문
四天王門
앞3·옆1칸 주심포 이익공 겹처마 맞배지붕; 사천왕문의 앞면 양쪽에 사천왕상이 그려져 있으며, 어칸을 들어서면, 좌측엔 용과 여의주를 든 서방광목천왕과 삼지창과 보탑을 든 북방다문천왕이, 우측엔 비파를 뜬 동방지국천왕과 보검을 든 남방증장천왕이 봉안되어 사찰을 수호하고, 수행자를 보호하는 상징적 역할을 합니다. 사천왕문이라 적힌 법현(法玄)스님의 친필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사천왕문: 사찰로 들어서는 3문(三門) 중 일주문 다음에 위치하는 산문(山門)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시는 대문.] 
금강문
金剛門
앞3·옆1칸 주심포 겹처마 맞배지붕; 금강문의 앞면 양쪽에 금강역사가 그려져 있으며, 어칸을 들어서면 좌측에 입을 벌리고 있는 밀적금강(密迹金剛),, 우측에 입을 굳게 다문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 세워져 있습니다. 금강문(金剛門) 편액은 주지스님이신 설정 송원 스님의 친필이 담겨 있습니다.
[금강문: 일주문과 천왕문 사이에 세워지는 산문(山門)으로,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며 불법의 수호신인 금강역사(인왕역사)를 모시는 산문. 인왕문(仁王門)]
일주문
一柱門
앞1칸 맞배지붕; 수덕사 내로 진입하게 되는 첫번째 산문(山門)으로, 지붕의 처마에는 붉은 여의주를 문 용이 조각되어 있으며, 덕숭산수덕사(德崇山修德寺)라고 쓴 서예가 손재형(孫在馨)의 친필이 담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일주문: 두 기둥이 나란히 세워져 있어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산문으로, 세속의 번뇌를 씻고 불법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문을 통과하며, 사찰의 영역과 세속 세계의 경계를 나타내는 의미를 지닙니다.]
근역성보관
槿域聖寶觀
수덕사 성보박물관은, 1997년 당시 가장 큰 전각이었던 황하정루 지하에 박물관 전시실과 수장고를 만들어 1998년 개관하였으며 현재 근역성보관 구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근역성보관은 본·말사의 불교 문화유산 4,000여 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1종 전문 박물관으로, 2022년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연수강의실, 3실의 수장고가 갖춰진 신관이 완공되어 지금에 이릅니다. 총 3실로 구성된 수장고 중 제1 수장고는 복층의 구조로 1층은 대형 회회류와 공예작품 위주로 격납되었고, 열린 수장고 형태로 구성이 되어있어 일반인들에게 부분적으로 유물열람이 가능하며, 2층은 복장유물과 전적류 격납을 위한 서랍장이 배치하여 격납되었습니다. 제2 수장고는 고승유물과 불교조각, 불화 격납을 위해 병풍장, 회화렉 형태의 수장대로 구성되어있고 일반수장고는 현대 작가의 작품 위주로 격납되어 있습니다.
-소조불상좌상(충남유형문화재384호): 높이 39cm, 어깨폭 13cm, 무릎폭 21.7cm의 조선후기 백의관음 소조불로, 그 예가 드문 작품이며 양식적으로 특이성이 지녀 불교미술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작품입니다.


부도전
浮屠殿
수덕사 고승들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놓은 승탑(부도)들을 모아 놓은 곳으로, 근역성보관이 나오기 전에 위치하며, 수덕사 3대 방장인 원담 스님의 부도가 부도전 입구에 하나, 부도전 안에 하나 모셔져 있습니다. 
[수덕사 만공탑(충남유형문화제473호): 만공스님(1871~1946)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47년에 세운 석탑으로, 전통적 승탑 형식을 탈피한 근대적 기념탑입니다. 일제강점기 왜색불교를 타파하고 한국불교의 자주성과 정통성을 수호하기 위한 만공스님의 사상과 불교 교리를 상징적으로 구현해 내고 있고, 각 부재의 구성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어 근대기 사찰 조형물로 가치가 높습니다.] 
산내암자 정혜사(定慧寺): 수덕사 북동쪽 산중턱에 위치하며 수덕사에서 가장 큰 암자로,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스님께서 제자들을 양성했던 비구 선원인 능인선원(能仁禪院)이 있으며,주법당으로 관음전이 있습니다.
견성암(見性庵): 대한제국기 만공 선사가 창건한 암자로, 국내 최초의 비구니 전문 선원인 제일선원(第一禪院)이 있으며, 『청춘을 불사르고』를 지은 김일엽(金一葉)이 기거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금선대(金仙臺): 수덕사 중심예불영역 북쪽 산중에 자리하고 있는 암자로, 인법당· 요사채· 금선법다 3동으로 되어있으며, 진영각(眞影閣) 안에는 만공의 영정과 유물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금성대의 성보로 금선대 칠성도, 금선대 신중도, 경허당대선사성우진영, 만공당월면대선사진영, 경허성우대선사진영, 만공월면대선사진영, 혜월혜명대선사진영, ‘동수정업문(同修淨業文)’편액(扁額), ‘금선대기’현판, ‘청풍이백간주인' 현판, ‘매심사’현판, ‘진영각’현판, ‘금선대’ 현판 등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환희대(歡喜臺): 최초 비구니 선원인 견성암이 창건된 곳으로, 비구니 암자이며, 원통보전을 본당으로 하고 있습니다.  『청춘을 불사르고』를 지은 김일엽(金一葉)이 기거하다가 죽은 곳으로, ‘김일엽문화재단(이사장 월송)’을 출범하여 만공 스님으로부터 이어지는 일엽 스님의 선 사상과 문학을 계승해나가고 있습니다.
극락암(極樂庵): 경내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위치에 자리한 암자로, 극락정사(極樂精舍)와 요사(寮舍)로 이루어진 비구니 도량입니다. 주불로 관세음보살과 후불탱인 불회도(佛會圖)를 모신 극락정사 건물에는 3대 방장을 지내신 원담 진성스님의 친필이 담긴 극락정사(極樂精舍) 편액이 전면에 걸려있으며, 법당 내부벽에는 치성광여래도· 신중도· 산신도 등이 걸려있습니다. 
선수암(善修庵): 극락암(極樂庵) 우측에 자리한 암자로, 대웅전· 동별당· 서별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별당 옆길에는 수덕사 중심경내로 향하는 해탈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원담스님의 쓰신 대웅전(大雄殿) 편액과 주련 4점이 걸린 대웅전 안에는 삼존불좌상과 불화 4점이 봉안되어 있으며, 동별당(東別堂)과 서별당(西別堂)의 편액도 원담스님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소림초당(少林草堂): 중심예불영역 북측 500여 미터 거리에 위치한 암자로, 앞2·옆2칸 홑처마 초가지붕의 요사채입니다. 사자굴(獅子窟)이라고도 부르는 소림초당은 정혜사와 수덕사의 중간 지점에 있으며, 경진교(更進橋)라는 다리를 지나 들어가게 됩니다.  만공스님이 창건하고 주석하던 곳이며, 정혜사· 만공탑· 향운각이 가깝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월사(轉月舍): 중심 영역의 북동쪽 산속에 자리하며, 만공 스님께서 말년을 보내신 요사로 모두 2개의 건물로 구성된 암자입니다. 전월사 편액이 걸린 건물은 아미타 주불과 후불도를 봉안하고 있으며, 다른 건물은 창 겸 화장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만공 스님께서 국권회복을 위한 천일기도후 광복소식을 듣고 뜰에 떨어진 무궁화 꽃잎으로 '세계일화(世界一花)' 4글자를 쓰셨다는 일화가 유명하며, 경내에는 스님께서 참선하셨던 좌선대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습니다. 
향운각(香雲閣): 중심예불영역 북측 산중에 자리한 암자로, 바로 아래 소림초당과 서측에 정혜사가 있으며, 소림초당 위에 있는 석조불상을 모시는 노전(爐殿)으로 사용되는 공간입니다. 

주소: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 수덕사안길 79, 전화번호: 041-330-7700 

 

♣이상으로 충청남도에서 꼭 가봐야 할 사찰 6곳 중 예산 덕숭산 수덕사에 대한 정보를 안내해 드렸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한국불교문화포털, 국가유산포털,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역사문화유산, 지역N문화, 불교신문, 법보신문, 네이버지식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대전일보, 예산수덕사홈페이지>

 

 

<출처:국가유산청· 한국중앙연구소>